정주리 감독, 도희야

영화 속 이야기는 여수에 있는 작은 마을로 도망치듯 떠나온 한 여성이 도희라는 소녀를 만나면서 시작된다. 정주리 감독의 첫 장편 영화로 그녀가 오래 전 알게 된 동화를 모티브로 써 내려간 이야기다. 평화로워 보이던 마을을 뒤로 폭력과 학대 속에서 자란 도희(김새론)의 일상이 드러나기 시작하고, 자신의 비밀로 인해 마을 파출소로 좌천된 경찰대 출신 엘리트 영남(배두나)의 타지 생활은 위태로워 보이기만 한다. 도희는 그런 영남을 만나면서 처음으로 자신을 향해 내밀어진 따뜻한 손을 잡게 되지만 영남은 그녀의 비밀을 알게 된 도희의 의붓 아버지 용하(송새벽)로 인해 지쳐가면서 그런 도희를 밀어내기 시작한다.

영화 도희야는 밖으로 드러나는 폭력의 잔혹함에 무게를 실어 그것을 자극적으로 표현하기 보다는 두 사람의 이야기를 긴장감과 고요함 속에 조용히 흘러 가도록 내버려 둔다. 하지만 피해자이자 순수한 소녀의 모습을 한 도희를 통해 그 결과물이 서서히 드러나면서 폭력이라는 주제에 힘을 실어준다.

정주리 감독은 성균관대 영상학과와 한국예술종합학교 영상원 전문과정을 마쳤다. 전작으로는 단편영화 ‘나의 플래시 속으로 들어온 개’, ‘바람은 소망하는 곳으로 분다(2006)’ ‘영향 아래 있는 남자(2007)’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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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까이에 드 서울: 영화 ‘도희야’의 이야기는 어떻게 처음 쓰게 되셨나요?
정주리:
제가 스무살 무렵이였던 것 같은데 ‘도희야’의 이야기는 그 때 들었던 짧은 동화를 시작으로 쓰게 됐어요. 언제 어디서 누구한테 들었는지는 기억이 전혀 나지 않아서 혹시 꿈이 아니였나라는 생각이 들기도 해요. 주인의 사랑을 받던 고양이에 대한 이야기인데 주인에게 새 고양이가 생기게 되면서 이 고양이는 주인의 관심 밖으로 멀어지게 되요. 그러던 어느 날 주인은 신발을 신다가 깜짝 놀라는데 신발 안에 죽은 쥐 한마리가 놓여 있었던 거죠. 주인은 고양이가 자기한테 복수를 한다고 흠씬 두들겨 패요. 그런데 그 다음 날에는 빨갛게 껍질까지 벗겨진 쥐가 신발 안에 놓여 있어요.

사실 그 고양이는 복수를 하려던게 아니라 주인의 사랑을 되찾고 싶어서 자기에게는 맛있는 식사인 쥐를 가져다 놓은 거였어요. 그런데 주인이 자기를 때리니까 ‘아 주인은 껍질을 벗기기가 힘들지.’라는 생각에 다시 껍질을 벗긴 쥐를 가져다 놓은 거였죠. 그런데 그것이 오히려 더 큰 혐오감을 불러 일으키게 되고, 이 둘의 관계를 예전처럼 돌이키기가 힘들어져요. 그런데 제 입장에서는 고양이의 마음도 그리고 주인의 마음도 충분이 이해가 가거든요. 그래서 마음이 아팠어요. 그리고 ‘어떻게 하면 둘이 서로를 이해할 수 있을까, 그것이 가능할까’를 고민하면서 이 이야기를 써내려 갔어요. 영화에서는 이 고양이가 도희라는 아이가 된 셈이죠. 시나리오를 쓰면서 ‘어떻게 하면 이 아이를 이해할 수 있을까’라는 고민을 많이 했어요. 그래서 외로움을 지닌 도희라는 아이와 또 다른 인물인 자신만의 외로움에 갇힌 영남이라는 여성이 서로를 만나게 되는 이야기를 생각하게 된거에요. 그리고 도희에게 커다란 외로움을 만들수 밖에 없는 영화 속 악인으로 용하라는 남성이 등장하게 되는 셈이죠.

‘도희야’라는 영화 제목이 인상적이에요.
처음 시나리오를 쓰기 시작했을 때 이야기 속 고양이를 닮은 도희라는 아이를 떠올렸어요. 그리고 이 영화는 도희를 만나는 어떤 사람에 관한 이야기가 되겠구나 – 라고 생각했어요. ‘도희야’라는 제목은 이 이야기를 처음 구상했을 때 동시에 떠올랐어요. 이 아이의 이름을 불러주는 그 사람으로부터 시작되는 영화에요.
그런데 ‘도희야’는 영어 제목으로 번역하기가 힘들더라고요. 하루는 이창동 감독님이 생각해 놓은 이름이 있냐고 물어보시면서 A girl at my door가 어떻겠냐고, 직접 지어주시며 뿌듯해 하셨어요. (웃음) 영어 제목은 그렇게 지어졌어요.

영화를 보다보면 피해자와 가해자의 입장이 계속해서 뒤바뀌는 듯한 인상을 받아요.
끔찍한 폭력 속에 노출되어 있는 아이가 단순한 피해자로 그치는게 아니라는 것을 말하고 싶었어요. 처음으로 관심과 사랑이 주어졌을 때 도희는 그것을 온몸으로 받아들여요. 그리고 자신에게 익숙한 ‘폭력’을 방법으로 선택하여 자신이 처한 어려운 상황을 어떻게든 헤쳐나려고 하죠. 폭력에 노출된 아이가 단순한 피해자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어느틈에 가해자의 모습으로 바뀔수도 있는, 그 모습이 관객들에게 전달 될 수 있기를 바랬어요.

영남이나 도희, 용하 – 영화 속 인물들이 모두 위태로워 보여요.
누구에게나 결점이나 헛점이 있잖아요. 살아가면서 상처 받기도 하고 또 그 상처를 회복하려 노력하기도 하죠. 그런데 그저 상처를 방치하기도 하는 모습도 실제로 우리가 살아가는 방식이라고 생각해요. 이 영화 속 인물들도 상처를 지닌 채 그것을 회복하려고 안간힘을 쓰는 것이 아니라, 둔해지기도 하고 그런 노력을 하는 것조차 귀찮아지기도 하는 그런 모습인 거죠.

바다가 보이는 작은 마을 – 영화속 배경은 어떻게 그리게 되셨나요?
가장 큰 요소 중 하나가 주인공 영남이 서울에서 마치 도망치듯 떠나온, 더 이상 갈데가 없어서 오게된 곳이다 보니 서울에서 가장 멀리 떨어져 있는 남해의 작은 바닷가가 배경이 됐어요. 완젼히 폐쇄적인 마을은 아닐지라도 서로의 잘못을 묵인하고 자기들만의 규칙이 있는 정도의 지역성이 필요했어요. 사실 제가 자란 고향이 여수이기도 해요. 그런 여러가지 요소들이 자연스럽게 모여지면서 영화의 배경으로 만들어졌어요. 실제 시나리오도 여수에서 썼어요.

어떻게 처음 영화 감독이 되고 싶다고 생각하셨나요?
막연히 영화 만드는 것을 꿈꿨던 것 같아요. 중학교 때 저희 아버지가 밤에 혼자서 비디오를 보셨거든요. 식구들이 다 잘 때. 그 모습을 잠깐씩 잠에서 깨면 보곤 했었는데 어린 기억에 인상적으로 남아있어요. 아버지가 보시던 비디오 테이프들을 낮에는 제가 보기도 하고, 그렇게 영화를 접하기 시작하게 됐어요. 다시 보게된 고등학교 2학년 일기 첫 장에 ‘나는 꼭 영화 감독이 되어야 겠다.’고 써있더라고요. 그 뒤로 한번도 장래희망이 변한 적은 없었어요.

시나리오를 쓸 때마다 매료되는 주제나 다시 쓰게 되는 소재가 있나요?
영화 학교에서 세 편의 단편 영화를 만들었는데 각각의 이야기가 모두 달라요. 한 편은 코메디, 한 편은 미스테리 그리고 또 한 편은 공포영화 같다는 얘기도 들었어요. 각기 완전히 다른 이야기지만 그 세 편을 관통하고 있는 공통된 문제의식도 있는 것 같아요. 커다란 주제로 보면 ‘폭력’이라고 볼 수 있는데, 어떤 때는 관찰자의 모습으로 그리고 피해자의 모습으로 또 어떤 때는 가해자의 입장에서 폭력이라는 주제를 다뤄왔었어요. 그런 폭력에 대한 주제 의식이 첫 장편 영화에까지 이어졌다고 볼 수 있겠네요.

‘도희야’의 마지막 장면은 먼저 정하고 이야기를 써내려 가셨나요?
영화의 엔딩은 제가 도달하고 싶었던 지점이기도 하지만 두 사람을 따라가면서 자연스럽게 써 내려간 셈이에요. 어떻게 보면 정말 이 두 사람의 이야기가 시작되는 출발점에서 끝나는 엔딩이기도 해요. 영화 속에서는 해피앤딩으로 보일 수도 있지만 앞으로 펼쳐질 두 사람의 이야기를 볼 때 막연히 해피앤딩이라고 보기는 힘들죠. 저는 이 두 사람이 굉장히 걱정 되요. 그런 마음으로 영화 OST의 엔딩 노랫말을 쓰기도 했어요.

촬영을 하면서 가장 애착이 가는 장면이 있었나요?
한 장면 한 장면에 다 애착이 가요. 그래도 편집 과정에서 어쩔수 없이 뺀 장면도 있어요. 사실 도희가 바다에서 춤을 추는 모습이 훨씬 더 아름답게 찍힌 장면이 있었는데 너무 매혹의 순간이 강조되는 바람에 영화에는 쓸 수가 없었죠.
그리고 영남이 경찰서에서 취조 받은 장면을 찍으면서 굉장히 뭉클했었어요. ‘아 이 인물이 살아오면서 지금까지 지니고 있던 외로움과 아픔을 분출하지도 못하고 그렇게 속으로 삭힐 수 밖에 없었구나.’ 그리고 이 인물을 배두나라는 배우가 디테일하게 표현해 내는 모습을 보면서 저도 굉장히 뭉클했죠. 원래는 더 다양한 각도에서 찍고 싶었던 장면인데 그렇게 하지 않고 바로 오케이 사인을 하게 된 장면입니다.

이창동 감독님이 프로듀서로 참여하였는데, 이 시나리오의 어떤 면이 감독님의 마음을 끌었다고 생각하세요?
이창동 감독님은 완성된 시나리오를 탁 보신건 아니에요. 당시 영상원 재학생과 졸업생을 대상으로 공모전이 있었어요. 다섯편의 시나리오가 선정됐는데 제 시나리오가 그 중에 한 편이였어요. 최종심사를 통해 마지막으로 선택된 한 작품만이 실제로 제작되는 거였죠. 그렇게 시나리오를 본격적으로 쓰기 시작했는데 제 시나리오는 최종심사에서 떨어졌어요. 이창동 감독님은 이 모든 과정을 지켜본 셈입니다. 얼마 지나지 않아 감독님께서 연락을 하셨는데 ‘심사에서는 떨어졌지만 우리끼리 한 번 만들어보면 어떻겠냐, 작은 이야기지만 의미있는 이야기라고 생각한다.’라는 얘기를 전해오셨어요.

마지막으로 – 도시 서울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세요?
굉장히 많은 사람들이 모여서 사는 거대한 도시라 거기서 오는 독특한 분위기가 있다고 생각해요. 각자가 모두 이방인이면서 어떤 집단을 구성하고 있기도 하죠. 저도 잘 모르겠어요. 사람들이 어떤 양면적인 모습을 지닌 채 살고 있는 도시라고 생각해요. 변화도 빠르고 그 빠른 변화에 적응하기 위해 계속해서 자신을 맞추며 살아가고 있죠. 각자가 각자의 곳에 모여 함께 살고 있지만 타인을 경계하고 배척하고 편견과 선입견으로 남을 바라보는 모습도 분명히 있거든요. 이 영화에서도 그 거대하고 숨막히는 서울이라는 도시로부터 탈출하는 인물을 그린 것도 있으니까요. 저와는 애증의 관계를 가진 도시이기도 하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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