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산에

강산에는 1992년 그의 부모님의 이야기이자 북한 실향민의 아픔을 담은 노래 ‘라구요’로 데뷔한다. 초기에는 사회 비판적이고 자유분방한 음악을 한다는 이미지가 강했지만 ‘라구요’와 함께 ‘넌 할 수 있어’, ‘거꾸로 강을 거슬러 오르는 저 힘찬 연어들처럼’ 등의 노래로 대중적으로 큰 인기를 얻기 시작하면서 한국적 정서를 담은 록음악을 부른다는 평가를 받는다. 대화하듯 툭 던지는 말투와 시원한 목소리, 일상의 소재가 자연스럽게 묻어나는 그의 음악에서 강산에식 자유로움을 느낄 수 있다.

2011년에 발표한 마지막 앨범 KISS는 그의 자체 레이블 ‘레코드 맛’ 설립으로 그가 원하는 방향으로 자유롭게 작업할 수 있었다. 클림트의 그림 KISS가 주는 기분 좋은 느낌을 그대로 담은 이 앨범을 통해 강산에의 또 다른 감성을 들어볼 수 있다. 현재는 유럽 콘서트와 함께 다음 앨범을 준비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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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까이에 드 서울: 언제부터 본격적으로 음악을 하게 되셨나요?
강산에:
 전에는 대한민국 사회가 정말 흑백이였어요. 겉 모습만 봐도 이 사람이 뭐하는 사람인지 알 수 있을 정도였으니까. 처음에는 내가 보고 들었던 한국 사회에 길들여진 사고를 가지고 있다가 89년도에 처음 이 친구(부인) 덕분에 일본이라는 나라에 가봤어요. 전에는 법적으로 자유 여행이 금지되어 있었어요. 그러다가 처음으로 일본 여행을 하게 된건데 일본이라는 사회는 저한테 충격으로 다가왔어요. 거기에서 느낀 해방감 속에서 ‘나’를 찾게 되고 그 때 처음으로 ‘내가 정말 좋아하는게 뭐지?’라는 질문을 할 수 있게 됐어요. 전체주의에서 서 너 개 밖에는 안되는 삶을 보고 있으니까 이 사람을 보며 ‘이렇게 살아야 되나?’ 저 사람을 보면서 ‘저렇게 살아야 되나?’가 아니라 정말 자유를 느끼게 된거죠.

그러다가 데뷔는 어떻게 하게 되신거에요?
일본에서 문화적 충격을 받고 곡을 만들고 있는데 한국에서 알고 지냈던 형이 우연히 레코드 회사의 프로듀서로 취직을 하게 된거에요. 그 선배가 원래 음악을 좋아해서 레코드 샵에서 일하고 있었는데 레코드 유통 회사가 제작 회사를 차리게 된거죠. 그래서 ‘주변에 아는 가수 있으면 스카우트 해라.’ 이렇게 된거에요. 그 형한테 ‘너 만들어 놓은 음악 있니?’하고 연락이 와서 그 때 가져갔던 음악이 그대로 앨범에 실리게 된거죠.

그렇게 데뷔를 하고 음악 활동을 하면서 사실은 제 사고방식이 한국 시스템에 부딛히는 일이 많았어요. 그래도 밖에서 본 것들이 있으니까 제 선택에 대한 확신을 갖을 수 있었어요. 데뷔초에는 반항적이였어요. ‘왜 나는 이렇게 삐딱할까. 예전에 고생은 했지만 인정도 받고 있는데 왜 이렇게 힘들지.’라는 생각이 많이 들었어요. 그래서 한동안 음악 활동을 안하고 여행을 다니기 시작했어요. 그 전에는 시선이나 관점이 외부를 향해 있었다면 그게 바뀌기 시작한거에요. 질문을 저 자신에게 하기 시작한거죠. 그러는 중에 정말 궁금했던 걸 알게 된거에요. 간단히 말하면 ‘삶이 뭐냐’는 질문에 ‘그냥 이게 삶이야.’라는 답을 얻은 거에요. ‘그러네. 그러면 너가 그렇게 도망나오고 싶어 했고, 갈증나고, 두고왔던 그 곳도 삶이였네.’ 그걸 받아들이고 난 후에 한국에 돌아왔어요. 그리고 2002년도에 다시 한국에서 가수 생활을 시작하게 된거죠.

좋아하는 음악 장르가 있나요?
지금은 특별히 좋아하는 장르는 없어요. 제가 처음 데뷔했을 때는 아직 장르라는 것이 다양하지 못했어요. 80대 한국 사회는 닫혀 있었으니까요. 누가 나와서 ‘이게 락이야!’ 이러면 모두 그게 락인줄 알았죠. 그런데 처음으로 밖에 나가보니까 락이라는게 어마어마한 역사와 다양성이 있는데 한국에서는 ‘이것만 락이야.’라고 생각하니까 답답했던 거죠. 그래서 ‘아니야, 이런 것도 있어.’라는 식의 락 음악을 하게 된거에요.
처음에는 그런 이유로 사람들에게 뭔가를 보여주려고 노력했는데 이제는 그냥 ‘음악’을 해요. 사람이 변하잖아요. 예전에는 ‘이거야.’라는게 있었는데 그러다 보니까 그 안에 갇히게 되고. 그렇게 길들여지는 것을 깨고 싶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한거죠.

어릴 때 음악을 좋아하게 된 계기가 있었나요?
특별히 음악을 좋아했다거나 음악적인 재능이 있었는지는 모르겠어요. 음악에 대한 어린시절 기억이 있다면 초등학교 때 합창단을 했던게 생각나요. 그 때는 제가 굉장히 미성이어서 소프라노 파트를 맡았었죠. 소리가 머리와 코를 울리는데 그 때 소리 바람이 눈물 샘으로 나왔던 기억이 있어요. (웃음) 중고등학교 때는 집안 사정으로 어머니와 떨어져 지냈는데 그 때 서럽게 많이 울었거든요. 그런 내 안의 서러움이 있을 때 나를 치유해주는 것이 노래였던거 같아요.

그러다가 대학에 와서보니 사회가 난리가 나 있는 거에요. 내가 보던 것, 알던 모든 것이 거짓이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 뒤로 학교를 그만두고 민생고를 해결해야 하니까 술집에서 서빙을 하기 시작했죠. 당시에는 통기타 문화였어요. 다들 통기타를 가지고 여기서 누가 노래하고 있으면 저기서 ‘기타 주이소.’해서 저기서 노래하고. 그 당시에 언더그라운드 음악을 많이 들었어요. 송창식, 김민기, 한대수 아저씨. 한대수 아저씨 음악을 듣고 많은 충격을 받았어요. 어떻게 우리 나라에 이런 사람이 있을까. 감동을 많이 받았죠.

당시에 외국 음악은 라디오에서 들려주는 팝 음악밖에는 몰랐거든요. 그러다가 지금의 부인을 만나 일본에 가보게 되면서 본격적으로 락의 역사도 알게 되고 다양한 음악도 듣게 되고. 블루스를 많이 들었어요. 뭔가 체질적으로 맞더라고. 그 다음부터 서양의 락이 들리기 시작했어요. 그 전에는 이런게 왜 좋은지 이해가 안 갔거든요. 그런데 블루스를 들으면서 정말 모든 음악이 몸으로 오더라고요. 그 때부터 많은 뮤지션을 접하게 된 것 같아요. 제 부인이 일본에서 음악학교를 다니면서 드럼을 했던 친구에요. 그러다보니 한국 타악기에 관심이 있어서 한국에 왔는데 그 때 저를 만나게 됐어요. 글쓰는 걸 잘해요. 시를 잘 쓰고. 일본어로 쓰면 둘이 같이 번역하면서 제가 그걸 같이 가사로 만들죠. 여러 곡의 가사를 그렇게 만들었는데, 넌 할 수 있어 노래 같은 경우도 이 친구가 쓴 가사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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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코드 맛’이라는 음악 레이블을 만드셨는데요.
특별히 음악 사업을 하기 위한 레이블이라기 보다는.. 그 전에 소속되어 있던 회사가 사람들은 너무 좋았는데 왠지 내 옷을 입고 있지 않다는 느낌은 있었어요. 취향이나 감각은 다를 수 있잖아요. 그 부분이 뭔가 나랑은 다르다는 생각이 들어서 고민을 하다가.. 그러니까 고민을 한 십 년 동안 한거에요. (웃음) 그러다가 ‘그 동안 고마웠다, 혼자 하고 싶다.’ 하고 나와서 혼자 뭔가를 하려니까 간판이 있어야 하더라고요. 그래서 만들게 됐죠. 그 때 나온 앨범이 KISS에요. 음악적인 컨셉보다는 다른 걸 경험하고 싶었고 그래서 음악 프로듀서도 다른 친구랑 해봤어요. 모든게 과정일지는 모르겠지만 제가 그냥 원하는 대로 작업한 앨범이에요. 사실은 소속사에 있을 때도 제가 하고 싶은 걸 하기는 했지만요. (웃음)

 

 

음악을 쓰실 때 가사나 멜로디를 먼저 쓰시는 편이신가요?
사실은 가사가 있으면 영감 받기가 더 쉽죠. 그런데 제가 늘 메모하는 스타일이 아니라 그러기가 힘들어요. 저는 주로 멜로디가 먼저에요. 그 다음 멜로디를 다듬어 가면서 ‘여기에 어떤 가사가 어울릴까’를 생각하면서 작업하는 편이에요.

노래부르기 좋아하는 장소가 있나요?
공연장 말고 자주 가는 바에서 지인들과 같이 놀다가.. 그런데는 다 기타가 있으니까 ‘기타 좀 줘’ 해서 부르는 스타일? 그런데 그걸 너무 많이 하니까 ‘형 오늘 우리 가게에서 노래 한 곡만 해줘.’ 이렇게 되는 경우가 많아요. 그래서 공연장에 안 오나? (웃음) 늘 들을 수 있으니까?

도시 서울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세요? (좋아하는 동네가 있나요.)
홍대를 좋아해요. 작업실이 홍대에 있어요. 6, 7년 전에 조용했을 때부터 작업실을 가지고 있었는데 갑자기 확 뒤집어 졌어요. 주위에 전부 옷가게가 생기고 바글바글 해졌죠. 걸어다니는 사람들을 보면 다 외국사람이에요.

서울은 아직까지는 굉장히 다이나믹한 것 같아요. 물론 스트레스도 많죠. 서울에서 생존하려면 자기만의 노하우가 있지 않는 이상 혹은 문화 생활을 하거나 어느 정도 생업이 되지 않으면 엄청난 스트레스죠. 차 막히죠, 사람도 많고 또 마치 저래야 하는 것처럼 사람들을 몰아가니까. 미디어나 방송에서 아직도 전체주의 적인 느낌이 많아요. 반면에 다이나믹 한 도시긴 하죠. 24시간 놀고 24시간 마실 수 있어요. 지금의 서울이 어떻게 보면 굉장히 재미있을 때죠. 언젠가 또 바뀔지도 모르지만.

계획하고 있는 프로젝트가 있나요?
당장에는 돌아가서 새 앨범 작업을 해야 되는데 그 앨범을 프랑스에서도 런칭하고 싶어요. 원래는 올해 그 계획을 하려고 했는데 뜻대로 안 되더라고. 유럽에서 투어를 하려면 많은 것이 준비되어야 하겠죠. 목표는 프랑스 말로 몇 곡을 만드는 것? (웃음) 일단 목표에요. 가사를 간단하게 써야되겠죠. 지금 생각하고 있는 아이디어 중에 하나는 ‘말’, 다양한 언어를 섞어서 앨범을 만들면 어떨까 그런 생각이 있어요.

마지막으로 강산에씨의 음악에서 잃고 싶지 않은 점이 있다면요.
그건. 역시 일본에서 처음 새로운 것을 접해서 감동받았던 그 때의 느낌? 정말 재밌었어요. 혼자서 음악을 막 만들어서 그걸 워크맨을 들으면서 ‘와 내가 만든 노래야.’ 신기하기도 하고. 그 때의 느낌을 죽을 때까지 잃고 싶지 않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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