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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정민, 식물 그리고 사람

일러스트레이터 손정민의 그림 속 차분한 색들을 보고 있으면 마음이 편안해진다.
작가의 눈과 손을 통해 그려진 풍경은 야생의 것과는 또 다른 섬세함으로 다가오는데, 그림 속 사람들의 얼굴이 차분한 선으로 묘사된다면 야생 동물과 식물은 과감할 만큼 풍부한 색의 질감으로 표현된다.
패션 디자인을 전공하고 뉴욕에서 액세서리 디자이너로도 활동한 손정민은 디자이너로 커리어를 쌓아가는 동안에도 그림 그리기를 계속해왔다. 좋아하는 사람들의 얼굴과 그 사람을 떠올리는 식물 그림을 함께 담은 책 ‘식물 그리고 사람’의 저자인 작가는 엘르 메거진을 위한 삽화로 시작해 자신만의 그림체로 다양한 브랜드와의 협업과 개인전으로 작업 활동을 계속해 나가고 있다.



책 ‘식물 그리고 사람’ 중에서






그림은 어떻게 시작하게 됐나요?
어릴 때부터 그림 그리는 걸 정말 좋아했어요. 동화책을 읽으면서 책에 그림을 그리기도 하고, 유치원 대신 미술학원에 다녔던 기억이 나요. 그러다가 고등학생 때 문득 그림을 일로써 그리게 되면 불행할 것 같다는 생각을 막연히 하게 되면서 패션 디자인을 전공하게 됐죠.
회사에 다닐 때는 지인들의 얼굴을 그려서 선물해주는 걸 좋아했어요. 그러다가 일을 그만두고 20대 때 뉴욕에 살게 됐는데, 뉴욕에는 정말 개성 있는 사람들이 많잖아요. 제 눈에 예쁘게 보이는, 그림으로 그리고 싶은 사람들을 그리다 보니까 얼굴 그림을 많이 그리게 됐어요. 

얼굴 그림만큼이나 식물 그림도 많아요.
어릴 때 정말 시골에서 자랐어요. 그 시절의 기억이 제 정서에 계속 영향을 준 것 같아요. 저희 형제가 모두 넷인데 방학 때면 같이 산이랑 계곡을 다녔어요. 엄마가 이꽃 저꽃 이름을 가르쳐주면 같이 향을 맡기도 하고 그렇게 시간을 보냈던 기억이 나요.

뉴욕에 살 때는 저희 집 옆에 조그만 공원이 있었거든요. 관광객은 오지 않는 평범한 동네 공원이었는데 거기가 할머니들이 자원해서 가드닝을 하는 곳이었어요. 그런데 그 정원에 제가 모르는 예쁜 꽃들이 너무 많은 거예요. 주말이면 동네 친구랑 놀러 가서 식물을 그리면서 세상 건전하게 놀았던 기억이 나요.
지금 생각해보면 당시에 회사 생활을 하고 나서 정신적으로 스트레스를 받고 있었던 것 같아요. 식물을 많이 키우는 사람들이 정신적으로 불안함을 느껴서라는 글을 읽은 기억이 있어요. 사실인지는 모르겠지만 식물을 그리면서 저 자신이 많은 위안을 받았던 것 같아요. 




작가의 드로잉북

책 ‘식물 그리고 사람’은 어떻게 출판하게 됐나요?
제가 미국에 있을 때 엘르 메거진과 인연이 닿아서 삽화를 그리게 됐어요. 당시에 뉴욕에서 알던 분이 엘르에 칼럼을 쓰게 됐는데 거기에 제 일러스트를 사용하고 싶다고 제안하셨고, 편집장님도 제 얼굴도 모르는 상태에서 그림만 보고 일을 맡겨주셨어요. 그렇게 시작해서 나중에 한국에 갔을 때 엘르와 전속 계약을 제안받게 됐어요. 당시에 저한테 뭘 하고 싶은지 물으셨는데 저는 책을 내고 싶었거든요. 그때 패션과 관련 책을 내보는 게 어떻겠냐는 제안을 해주셨는데 마음이 내키지가 않는 거예요. 그럼 어떤 책을 내고 싶은지 물으셔서, 사람과 식물을 그리는 걸 좋아하는데 그 둘을 연관시킨 작업을 하고 싶다는 얘기를 나눴었어요.

그러다가 시간이 흘렀고 미메시스 출판사에서 책을 만들자는 연락이 왔어요. 그런데 제 책을 맡으신 편집자분이 예전에 일러스트레이터셨데요. 정말 고맙게도 그분에 제 그림을 많이 좋아해 주셨는데 ‘얼굴과 식물 작업 많이 하셨던데 그 둘을 연관해서 책을 만들면 어때요’라는, 제가 하고 싶었던 그대로의 제안을 해주셨어요. 다만 글을 쓴다는 생각은 못 했었는데 글이 같이 있으면 좋겠다는 얘기가 나왔어요. 글을 함께 수록하게 되면서 일 년을 생각했던 작업이 이 년이 걸리게 됐어요.

 






최근 작업 중에는 동물 그림도 많이 보여요.
작년에 여우이야기(Le Roman de Renart)라는 유명한 프랑스 우화가 출판됐는데, 그 책에 들어가는 삽화 작업을 하면서 처음으로 동물을 그려보게 됐어요. 그런데 주변 사람들로부터 ‘식물에는 너의 캐릭터가 많이 드러나지 않는데 동물을 그릴 때는 잘 드러난다. 동물 그림을 더 그려보면 어떻겠냐’라는 이야기를 들었어요. 그러다 작년 겨울에 우연히 내셔널지오그래픽 잡지에서 야생 동물 사진을 보게 됐는데, 야생동물의 예측할 수 없는 형태나 색이 너무 좋아서 하나씩 그리다 보니까 시리즈로 작업하게 됐어요. 


좋아하는 일러스트레이터가 있나요?
마이라 칼만이라는 미국의 할머니 일러스트레이터를 좋아해요. 일러스트레이터가 되기 전부터 서점에 가서 많이 보기도 했어요. 너무 가볍지 않고, 너무 상업적이지도 않아서 정말 좋다고 생각했어요.

기억에 남는 에피소드가 있다면요.
화방에 갈 때마다 새로운 재료가 나오면 사서 한 번 써봐요. 그런데 항상 생각지 못하게 똑같은 색을 사오는 거예요. 그 색이 모스그린이에요. 모스그린은 브랜드마다 나오는데 색이 조금씩 다 달라요. 어떤 때는 써보고 싶은 색이라는 생각이 들어서 사오는데 이미 가지고 있는 것과 같은 브랜드의 색을 사 오는 일도 있어요. 


“세라믹 작업은 예전부터 해오고 있었어요.
만들어서 얘네들을 하나씩 죽 늘어놓으면 뭔가 상상을 하게 되잖아요.
이야기가 만들어지는 것 같은 기분이 들어서 좋아해요.”

기회가 된다면 해보고 싶은 일이 있다면요?
제가 패션 매거진 작업을 오랫동안 했거든요. 그런데 한국에서는 아직 일러스트로 표지를 하는 경우를 못 봤어요. 미국에 있을 때는 서점에 가면 예쁜 일러스트로 된 잡지 표지를 많이 봤거든요. 그래서 메인 표지를 한 번 일러스트로 그려보고 싶어요.

마지막으로 서울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나요.
그리고 좋아하는 장소가 있다면요?
서울은 굉장히 모순된 도시인 것 같아요. 조금만 들어가면 굉장히 화려한 동네인데 거기서 조금만 더 들어가면 판자촌이 있다던가. 바로 옆에 붙어있는데도 완전히 다른 분위기와 모습을 한 동네가 나와요.
서울에서 제일 좋아하는 곳은 제가 사는 청운동이에요. 사람 많고 시끄러운 곳을 안 좋아해요. 인왕산이랑 북악산이 근처에 있거든요. 한 시간 반 정도 걸리는 인왕산 산책로가 있는데 그 길로 산책하는 걸 정말 좋아해요. 




무목적 공간 전시

https://www.jungminson.ar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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