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과 선분(Line and Segment)은 김민선의 세라믹 스튜디오다. ‘흙’의 물성이 주는 도자기의 보편적인 이미지와는 다르게, 선과 선분은 과감하게 뻗은 곧은 선과 단색조의 표면이 그래픽적인 이미지를 떠올린다.
작업 ‘Polu and Melemele’는 하와이 언어로 각각 하늘의 푸른색과 노란색을 뜻한다. 작가는 외부 유약을 칠하지 않고 연마함으로써 매트한 색감과 형태를 더 과감하게 부각 시켜 준다. 반면에 나뭇재가 섞인 유약을 사용한 세라믹의 내부는 절제된 표면과는 다르게 재료의 질감을 풍부하게 드러낸다. 선과 선분은 2017년에 문을 열었다.
01. 선과 선분은 어떻게 시작하게 됐나요.
세라믹은 대학에 입학할 때 전공으로 선택하면서 처음 접했어요. 선과 선분은 졸업 후에 활동하기 위해서 만든 브랜드에요. 당시에는 브랜드를 하고 싶었던 것 같아요. 지금은 제품도 계속하고 싶지만, 상품이 아닌 제 작업을 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어서 이 둘을 어떻게 나눠야 할지 고민하고 있어요.
02. 선과 선분이라는 이름은 어떻게 지어졌나요?
사실은 선과 선분에서 ‘선’은 제 이름 김민선에서 왔어요. 선분은 사 년 전에 시 워크숍에 참여했는데, 그때 쓴 시에 제가 선분이라는 말을 썼었어요. 일상적으로 사용하는 말은 아닌데 그 단어를 사용했다는 건 내가 이 단어의 느낌을 좋아해서구나’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뜻이 있다기보다는 그 말이 주는 이미지가 좋아서 ‘선과 선분’이라는 이름을 짓게 됐어요.
선과 선분은 2017년에 시작했어요. 해방촌에 있는 작업실 바로 옆 식당을 지인이 하고 있어서, 여기에 자리가 났을 때 연락을 받았어요. 그전에도 몇 번 와봤는데 당시에는 분위기가 지금이랑 조금 달랐어요. 좀 더 러프했어요. 무엇보다 일반적인 공간이랑 달랐어요. 이 건물이 69년대 지어져서 70년 때 부흥했던 시장에 있거든요. 지금은 상점이 더 많아졌지만, 그때는 아직 시장 분위기가 많이 남아있었어요. 위치도 너무 외곽도 아니고 이태원과도 가깝고, 일반적인 도자기 공방 느낌이 아니라서 그 점에 더 끌렸어요.
03. 선과 선분은 어떤 세라믹을 만드나요?
세라믹과 영상 디자인을 같이 전공했어요. 당시에 그래픽 디자인이나 영화, 사진에 관심이 많았는데, 그런 성향이 작업에도 드러나는 것 같아요. Polu 시리즈는 작업할 때 겉면이 완전히 편평하고(flat) 단단한(solid) 느낌으로 작업하고 싶었어요. 그런 질감이 유약으로는 잘 나오지 않거든요. 유약은 아무래도 가변적이에요. 그래서 그 질감을 찾기 위해 겉면은 유약을 칠하지 않고 흙 자체에 색을 섞어서 연마한 작품이에요. 실린더 베이스의 경우 질감을 보면 얇고 플랫하게 만들고 싶었어요. 기존에 사람들이 생각할 수 있는 도자기와는 그런 부분에서 조금 다른 것 같아요. ‘아, 이게 도자기였어?’라고 얘기하는 사람도 있어요.
04. 작업할 때 영감을 얻는 소재가 있나요?
좋아하는 이미지들이요. 예전에 암스테르담에서 활동하는 윌리아라는 사진작가와 협업했던 시리즈가 있어요. 투피스라는 카페의 전시공간에서 전시를 했었는데, 저 다음으로 전시를 한 작가가 윌리아(Lilia Luganskaia)였어요. 그때 제 작업을 마음에 들어해서 자기 사진과 교환하자는 제안을 했었어요. 저도 윌리아의 사진을 좋아해서 서로 연락을 이어오다가, 선과 선분의 세라믹 작업을 암스테르담에 보내서 촬영하게 됐어요. 아네스 바다(Agnès Varda)의 ‘해변’이라는 영화가 있는데, 감독이 해변을 중요하게 생각해서 해변에 거울을 놓고 찍은 씬이 있어요. 제가 그 영화를 좋아하기도 했고, 제품 사진이라기보다는 작업의 개념으로 생각해서 사진 작업을 할 때 그 영화의 장면에 대해 얘기했었어요. 세라믹 작업을 모아 놓으면 어떤 모습이 나올까를 생각하는 것이 재밌어서 시리즈로 작업하는 걸 좋아해요.
05. 어떤 형태를 좋아하세요?
학생 때 세라믹을 할 때는 전통적인 형태에 흥미가 없었어요. 아무래도 도자기라는 것이 지금보다는 옛날 것이 더 높게 평가 받기 때문에 거기에 대한 반감이 있었어요. 그런데 작업을 하다 보니까 옛 도자기를 보면 아름답다는 생각이 들어요. 루시 리(Lucie Rie)라는 영국 작가는 일본 다기에서도 영향을 받았는데, 그 작업을 보면 미묘한 곡선이 있어요. 제가 어려워하는 것이어서 더 아름다워 보이는 것 같아요.
06. 해보고 싶은 프로젝트가 있나요?
예전에 했던 작업 중에 여러 이미지와 텍스트(사진, 조형 이미지, 여행 사진, 일기)를 컴퓨터가 랜덤으로 선택해서 책으로 만들었던 작업이 있어요. 아무래도 작업을 할 때 자기 검열을 계속하게 되는데, 컴퓨터가 선택한 색과 이미지를 재구성해 만든 작업이 재밌었던 기억이 나서 미디어 아티스트와 협업해 3D로 구현해보고 싶어요. 세라믹 3D 프린터로 프린트해서 그 뒤에 유약을 바른다거나, 제가 할 수 있는 작업을 더해서 프로젝트 개념의 작품을 해보고 싶어요.
07. 좋아하는 작업 과정이 있나요.
도자기는 초벌을 하고 나서의 모습을 보면 묘하게 아름다워요. 작업을 진행하면 할수록 수분이 없는 상태가 되고 크기도 조금 줄어요. 초벌은 사람들이 볼 수 없는 과정의 모습이고 사용할 수 있는 상태는 아닌데, 그 묘하게 수분기 있는 연약해 보이는 모습이 아름다워서 좋아하는 작업 과정이에요.
08. 서울에서 좋아하는 장소가 있다면요.
작업실이 있는 해방촌도 좋아하지만 5살 때부터 계속 성수동에서 살았어요. 그래서 그 동네에 애착이 많아요. 지금은 사람들이 말로만 공장 지대라고 하지만 제가 어렸을 때는 정말 공장 지대였어요. 작은 공장들에서는 가게 앞에서 용접을 하시잖아요. 불꽃이 튀면 초등학생 때는 피해서 다니고 그랬던 기억이 나요. 지금은 승마장이었던 곳이 서울 숲으로 바뀌고 동네 분위기도 많이 달라졌어요. 서울에 있는 공간들이 층고가 낮고 좁다면 성수동은 공장이었던 곳이어서 층고도 넓고 공간이 시원시원해요. 사람들이 성수동으로 가는 이유가 그래서예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