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히려 어른이 되면서 동화에 대한 나긋한 동경심을 품게되기 마련이다. 어릴 때 좋아했던 동화를 떠올리면 향수가 섞인 묘한 감정을 느끼는데 그만큼 아이들에게 – 그리고 어른이 되어버린 아이들에게 이야기 속 세상은 소중하다. 잔뜩 인상이나 쓰고 진지한 이야기를 늘어놓는 소설보다 사랑스러운 그림이 담긴 동화속 이야기가 더 위로가 되는 순간이 있다. ‘여우모자’와 ‘얀얀’은 세상과 소통하는 법을 배워나가는 소녀들의 이야기. 조용하고 소심한 아이는 쉽게 사람들과 어울리지 못하고 – 그저 입술을 꼬옥 다문채 자신만의 세계에 갇혀버린다. ‘여우모자’에서 혼자 몰래 빠져나와 숲을 걸으며 시간을 보내는 소녀는 아기 여우를 만나면서, 말을 할줄 모르는 얀얀은 뜨개질을 배우면서 세상 밖으로 천천히 다가선다.
순백의 하얀 종이에 담긴 얀얀과 여우모자는 다른 동화책들과는 조금 다르게 디자인 됐다. 기존에 – 어린이들을 위해 읽기는 쉽지만 조금 과도한 듯한 커다란 활자와 촉감은 별로지만 잘 더러워지지 않아서 좋은 코팅지를 사용하는 대신 고심해서 고른 양질의 종이에 빈 공간이 여유롭게 담겨있다. 어른이 되어서도 여전히 사람들과 어울리는 것은 어렵고 – 그런 의미에서 김승연 작가의 동화는 어른과 아이 모두에게 즐거움을 주는 이야기. 텍스트 컨텍스트는 김승연 작가의 1인 독립출판사이자 디자인 스튜디오다. 당찬 그녀가 직접 그리고 쓰고 출판까지 한 동화책 여우모자와 얀얀에 담긴 이야기.
인터뷰
김승연씨의 작품세계를 정의한다면요?
처음 그림을 그릴 때는 단순히 ‘내가 느끼는 것을 어떻게하면 다른 사람들도 느끼게 할 수 있을까’ 하는, ‘나’를 표현하고자 하는 마음에서 시작했던것 같아요. 시간이 지나면서 결국 내가 느끼는 감성이란게 나의 취향과 생각 그리고 나를 둘러싼 환경을 통해 만들어진다는 생각이 들었죠. 좀 더럽긴하지만 제가 생각하는 그림은 아기똥같아서 ‘예술가가 좋은걸 보고 좋은 생각을하며 잘 살아야 좋은 작품이 나오겠구나’라는 생각을 했어요. 그런 마음으로 그림을 그리다보면 ‘내’ 안에 있는 부정적인 감정이나 잊고 싶은 기억들이 자연스럽게 정화 되어서 오히려 제 자신이 힐링 되기도 해요.
저에게 그림이란 ‘내가 어떻게 살아왔는가를’ 보여주는 증거 같은거죠. 작가로써 중요하게 여기는 점은 보편적인 상황이나 이야기를 아주 사적이고 특별하게 풀어내거나 오히려 반대로 특이하고 사적인 이야기를 보편적 정서로 풀어내는 것 – 이라고 생각해요. 그 점이 그림책을 그릴때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하는데, 동시에 가장 어려운 숙제 같은 부분이예요.
그림의 주인공 캐릭터와 스토리는 어떤식으로 만들어지는지 궁금합니다.
대부분이 경험에 의한 ‘추억‘과 ‘우연‘에서 시작되는 것 같아요. 전자인 추억에 대해 이야기하자면 저의 두번째 그림책인 ‘얀얀’은 어린시절 출근하던 아빠가 가끔 주머니에서 꺼내주시던 동전들과 아빠 양복 주머니에서 몰래 꺼내먹던 쌉싸름한 ‘은단’과 같은 작은 추억들이 계기가 되어 그리게 되었어요. 그리는 대부분의 것들이 ‘내가 본 것’, ‘내가 겪은 것’, ‘내가 들은 것’, ‘내가 지금 생각하는 것’들이 희석된 추억인 것 같아요. 이런 추억들을 기본으로 겪지 않은 일들도 감정이입을 통해 공감하거나 상상하는 것들을 덧붙이는 거죠.
그리고 후자인 ‘우연‘에 대해 얘기하자면 – 저는 굉장히 산만하고, 덜렁대고, 생각이 쉽게 바뀌고 변덕스러워요. 노트를 사도 첫 장부터 쓰기 힘들뿐 아니라 한권을 다쓰기 전에 꼭 다른 노트를 사서 그렇게 생기게 된 여러 권의 노트를 두서없이 사용하죠. 제 이런점을 인정하게 된 건 그림책을 그리면서 부터예요. 그 전까진 ‘차근차근 하나부터, 깨끗한 환경 아래, 부지런한 사람처럼 노력해보자.’ 하기도 했지만, 사람이 쉽게 바뀌지 않으니 잘 안되요.
그래서 이야기를 만들기 위한 ‘나만의 룰'(내 성향에 맞는)이 생겼어요. 항상 단정짓지 않고 모든 생각을 열어놓으려 노력해요. 마음에 거리끼는 것이 없어질 때까지 아주 ‘산만한’ 고민들을 계속하는거죠. 이야기가 생각났을 때 술술 풀리는 경우도 있지만 무언가 걸리는 것이 생기면 그 고민으로 바닥을 칠때까지, 제 자신이 납득할 수 있을 때까지 마음 한 켠에 두고 외면하기도 했다가 파고들기도 했다가를 반복하며 질질 끌어요. 그러다 보니 시간이 많이 걸리기는 하지만 결국 ‘우연히’ 이런 산만한 생각들과 고민들이 조합이 되고 해결이 되어서 더이상 거리끼는 부분이 없어지면서 이야기가 완성되는 것 같아요. 정말 ‘우연히’죠.
text context 디자인 스튜디오를 직접만들게 된 계기와 잃어버리고 싶지 않은 text context의 철학은?
그 때 당시에는 여러가지 이유가 있었는데 지나고 생각해보니 텍스트컨텍를 만든 가장 큰 이유는 하고 싶은대로 하지 않으면서 말만 하던 저에게 질려서 였던 것 같아요. 행동파가 아닌’생각파’이다 보니 행동은 하지않고 생각만 하다 생각에 질려 결국 하지 않고 끝나는 경우가 많았거든요. 그런 내가 너무 지겹고 짜증나 나 자신이 참 별로라는 생각이 들었을 때 텍스트컨텍스트를 만들고 그림책 <여우모자>를 출판하게 되었어요. 철학은 따로 없지만 늙어 죽을 때까지 계속 이 일을 하고 싶다는 것. 그게 다예요.
책장에 있는 가장 아끼는 책은? 그리고 어릴 때 특별히 좋아했던 동화가 있나요?
지금 책장에 있는 가장 좋아하는 그림책은 사노요코의 <세상에 태어난 아이>, 어렸을때 좋아했던 동화는 계몽사라는 출판사에서 나온 <전우치전>예요. 어른이 된 후 이만익 화백이 그린 뮤지컬 명성왕후의 포스터를 보고서야 계몽사의 <전우치전>을 그린 사람이 이만익 화백이란걸 알게 되었죠. 어린 눈에도 전우치의 능청스럽고 개구장이 같은 표정이 너무 귀여워 보고보고 또 봤던 기억이 나요. 어린이가 따라 그리기에 아주 쉽기도 하고. 전우치가 그림속으로 뿅하고 들어갈 땐 너무너무 부러워 배가 아플정도였어요.
마지막으로 서울이라는 도시에 대한 인상/생각. 그리고 서울에서 즐겨가는 장소가 있다면 알려주세요.
서울은 정말 ‘자이언트’ 서울이에요. 정말 커다랗고 끝도 없고 서로가 서로에게서 멀죠. 홍대에서 십 년 넘게 살아도 제대로 된 단골집이 없어요. 대부분 제가 좋아하고 자주 가는 곳들은 금새 사라져버려서. 유일하게 망하지 않고 잘되서 변하지 않은 곳은 한강인 것 같아요. 더운 여름 밤 친구들과 돗자리에 누워 잠도 자고 답답한 날 맥주 한 캔 사서 홀짝홀짝 마시기도 하고. 혼자 신나게 패달을 밟으며 자전거를 타기도 하고, 지하철을 타고 가다 한강다리를 건너며 저 멀리 반짝이는 물결에 눈이 부신것도. 한강은 항상 그대로라서 – 그래서 좋아요. 아마 서울에 한강이 없었다면 서울을 마음속으로 계속 미워하고 있었을 지도 모르겠네요.
요리 그림책, 다람쥐 간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