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달 작가의 그림책에는 따뜻함, 진중함, 푸근함이 녹아있다. 색연필의 선과 면이 그려내는 이야기 속 풍경은 친숙하면서 세심하다. 구식 선풍기, 가구 위에 올려진 이불, 벽에 걸린 가족사진, 시원한 수박의 붉은 단면은 우리가 잘 아는 기억 속 친근한 풍경을 떠올린다. 여름을 배경으로, 상상만으로도 즐거운 수박 수영장과 소라 속으로 떠나는 할머니의 이야기는 작가의 친절한 상상력이 더해져 마음 한켠에 따뜻함과 즐거움이 남긴다.
01. 어떻게 처음 그림책을 그리자는 생각을 하게 됐나요?
제가 디자인과를 다니기는 했는데 디자인을 그닥 잘 하지 못했어요. 저한테는 디자인이 너무 어려워서 서점에 가서도 전공 서적을 좀 뒤적이다가 근처 그림책 코너로 놀러 가 그림책을 구경하곤 했어요.
그러다 학교 수업에서 과제로 학교 근처 동네에 사는 강아지에 관한 이야기를 그림책으로 그린적이 있었어요. 지금 생각해 보면 별 이야기 아닌데 제가 그린 그림책을 펼쳐서 한 장씩 읽어주니까 같이 수업 듣는 사람들이 모두 와하하하 하고 웃었어요. 그때 좋았던 것 같아요.
나중에 졸업하고 뭘 해서 먹고살지 고민하는데 제가 디자인을 영 잘 못해서 그림책을 그려서 공모전에 내 보기로 했어요. 떨어졌지만요.
02. 그림의 소재는 어떻게 찾나요?
이야기에 여름이 자주 등장하는데, 수박 수영장과 할머니의 여름휴가 이야기는 어떻게 만들게 됐나요?
그때그때 생각나는 걸 그리는 편이에요.
오래전이라 사실 잘 기억이 안 나는데 ‘수박 수영장’은 제가 수박을 엄청 좋아해서 수박 트럭이 오면 한 통씩 사 먹곤 했는데 손가락으로 검은 씨를 파내다가 손가락이 시원해져서 그리게 되었던 것 같아요.
‘할머니의 여름휴가’는 할머니에게 숨겨진 능력이 있었으면 좋겠다에서 시작했던 것 같은데 어떻게 하다가 소라 여행으로 이어졌는지는 잘 기억이 안 나요. 아마 그때 제가 바다에 놀러 가고 싶었나 봐요.
03. 그림을 그릴 때 많은 재료 중에서 색연필을 사용하는 이유가 있나요?
한국에서는 미대 디자인과 입시에 색연필 파스텔 물감을 써요. 그때 쓰고 재료가 많이 남아서 계속 쓰고 있는데 색연필이 제일 쉽게 꺼내 쓸 수 있어서 가장 많이 쓰고 있는 것 같아요.
04. 기억에 남는, 어린 시절에 읽었던 가장 기억에 남는 그림책 혹은 이야기가 있다면요?
저 어릴 때는 그림책이 별로 없었어요. 그래서 더 커서 중고등학교 때쯤 수학 과외 선생님 집에서 그 집 아이들이랑 같이 그림책을 본 게 더 기억에 남아요.
그중에 ‘가브리엘 벵상’이 그린 ‘비 오는 날의 소풍’이라는 책을 되게 좋아했는데 곰 아저씨랑 어린 쥐랑 사는 것도 너무 귀엽고 비가 오는데 안 오는 척 소풍을 가는 장면도 너무 아름다워서 그때 처음 그림책 삽화가가 되고 싶다고 생각했어요. 근데 그때는 제가 꿈이 가볍고 많던 시기여서 간호사가 되고 싶다느니 유치원 선생님이 되어야 되겠다든지 하는 식으로 금방 바뀌긴 했어요.
05. 그림책 한 권을 완성할 때 어떤 부분이 어렵나요?
이야기 하나를 그리고 쓰는 데 시간이 얼마나 걸리는지도 궁금합니다.
음 어려운 건 마감할 때쯤에는 바쁘고 아픈 데가 많아져서 삶의 즐거움이 많이 사라져요. 바쁘지 않게 일하고 싶은데 그게 또 잘 안 되는 것 같아요.
책마다 조금씩 다른데 보통은 5년 좀 넘게 걸리는 것 같아요. 이야기를 만들고 콘티를 짜는데 도중에 막히면 그냥 서랍에 넣어두고 한동안 안보다 한참 후에 꺼내서 다시 짜곤 하거든요. 그래도 마감이 가까워지면 손과 머리가 빨라져요. 그 대신 제 삶의 질이 많이 떨어져 버려서 사는 게 즐겁지 않습니다.
06. 그림책을 그리면서 기억에 남는 에피소드가 있나요?
그리면서는 아니고 그림책을 그리고 나서 있었던 일이 있어요. 제가 ‘당근 유치원’이라는 빨간 토끼가 유치원에 곰 선생님을 좋아하는 그림책을 그린 적이 있는데 거기에서 마지막에 곰 선생님이 혼자 밤에 퇴근하다가 빨간 토끼가 한 말이 생각나서 푸핫 하고 웃는 장면을 그린 적이 있어요. 근데 얼마 전에 절 좋아해 주는 엄청 귀여운 아이가 제가 자기 집 근처에 살았으면 좋겠다고 말했다는 거예요. 그래서 그 아이 엄마가 “왜? 자주 놀러 가게?”라고 물어보니까 그 아이가 “아니, 창문으로 보게.”라고 대답했다고 해서 너무 귀여워서 혼자 밤에 걷다가 곰 선생님처럼 푸핫 하고 웃었어요. 너무 귀여워서 100만 번 말하고 다니고 싶어요.
07. 기회가 된다면 해보고 싶은 프로젝트가 있다면요?
언젠간 단편 애니메이션을 만들고 싶다고 생각하는데 잘 안돼요. 바쁘면 바빠서 안 하고 시간이 나면 오랜만에 빈둥댄다고 안 하고 전 글렀나 봐요.
08. 마지막으로 서울은 어떤 도시라고 생각하세요? 좋아하는 장소/동네가 있다면 소개해 주세요.
서울은 한국 수도라고 생각합니다. 전 지방에서 자라서 항상 수도인 서울을 동경했던 것 같아요. 그런데 처음 서울에 갔을 때 동대문 근처를 지나갔는데 오래된 남루한 건물들과 짐을 잔뜩 실은 오토바이들을 보고 제가 상상했던 서울이랑 되게 다르다고 생각했어요. 그런데 지금은 서울의 그런 남루한 세월의 때가 묻은 모습을 제일 좋아해요.
전 서울의 구도심을 제일 좋아하는데 종로의 나이 든 골목골목의 풍경과 귀도 눈도 시끄러운 시장, 그리고 그 거리에서 볼 수 있는 주름진 서울 사람들, 어둑한 광화문 근처의 인디 영화관과 익숙한 교보문고 그리고 건물 안에 있다가 밖으로 나와 횡단보도를 건널 때 보이는 산의 능선 아래 경복궁 뷰도 좋아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