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문학이 나의 신앙이 되길 바라지 않습니다. 소설을 쓰는데 배움이나 경험이 반드시 중요하다고 생각하지도 않습니다. 하지만 소설 안의 어떤 정직. 그런 것이 나에게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 김애란 작가의 ‘달려라 아비’ ‘cours papa, cours!’
문학 작품만큼 타인의 감성을 섬세하게 들려주는 소중한 매개체가 또 있을까. 작가들은 자신이 느꼈던 어느 날의 기억을 ‘소설’로 정직하게 적어내는 것일 뿐인데도 그 안에는 우리들만의 감성이 묻어나는 이야기가 담겨있다. 그런 한국 작가들의 소설을 따뜻한 종이에 담아내는 출판사 Decrescenzo가 2011년 프랑스에서 문을 열었다.
인터뷰
출판사에 대해 소개해주세요. 어떤 분들이 출판사를 운영하고 계신가요?
Decrescenzo는 한국 문학만을 펴내는 프랑스 출판사예요. 사회과학이나 인문학, 시 같은 다양한 분야의 도서들도 함께 출판되고 있지만 현대문학에 가장 큰 비중을 두고 있죠. 출판사 편집 위원회에서 한국과 프랑스에서 활동하고 있는 작가분들 그리고 문학 비평가분들과 상의해 좋은 작품을 선택하고 있습니다. 현재는 5명이 함께 일하고 있지만 그 중에 정직원은 3명이에요.
어떻게 처음 한국 문학에 관심을 가지게 되셨나요?
흔히 여행하는 이들이 그렇듯 소설을 탐독하다보면 국경이라는 걸 훌쩍 뛰어 넘어 이나라 저나라를 왕래하게 되죠. 소설을 처음 읽기 시작할 때는 그 소설이 어디에서 왔는지, 어떤 문화적 배경으로 쓰여졌는지에 관해서는 쉬이 잊어버린 채 이야기에 빠져들어요. 처음에는 이문열, 이청준 소설가의 작품을 접하면서 당시에는 잘 모르던 한국이라는 타국의 소설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 뒤로 다른 소설가의 책도 읽게되면서 한국 문학과 저 자신과의 거리가 조금씩 좁혀졌죠.
어떻게 출판사를 낼 생각을 하게 되셨나요?
처음에는 책을 한 권, 두 권, 세 권 번역하게 된 것이 책에 대한 소개도 쓰게되고 그렇게 쓰는 글도 하나 둘 늘어나다보니 ‘글마당’이라는 좋은 이름의 문학 잡지도 시작하게 됐어요. 교직자리에 있다보니 제 열정을 다른이에게 전달하는 것이 인생에서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게 됐죠. 그저 번역을 하고 소개 글을 쓰기만 해서는 그 뭔가를 전달하기에는 부족함을 느꼈어요. 그래서 출판사를 내야겠다는 바램을 품게 됐죠. 처음 출판사를 시작하고 싶다는 생각을 갖게 된 것은 30년 정도 됐습니다. 다른 출판사에 한국 문학 총서를 함께 내보지 않겠냐는 제안도 해봤는데 결국에는 수포로 돌아갔죠. 곧 전자책 출판 계획도 있기는 하지만 종이 서적을 내고 싶다는 마음에 제 스스로 출판사를 여는 수밖에는 없다는 생각이 들었죠.
현재의 한국 문학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세요?
현 한국 문학은 한국 사회와 동거동락하고 있어요. 그 외에는 다른 방법이 없으니까요. 파란만장했던 역사에 뿌리 내렸던 전후 문학에 비해 요즘 작가들은 새로운 소재를 찾고 있죠. 한국 소설의 세계화를 단순히 번역되고 출판되는 책들의 수로만 정의내릴수는 없을 것 같아요. 아무래도 한국의 젊은 작가들이 어느 나라에나 통용될 수 있다는 보편적인 소재로 글을 쓴다는 점이 큰 요인으로 작용했다고 생각해요. 물론 한국 문학만이 담아낼 수 있는 고유의 색도 있기는 하지만요.
한국 문학을 출판하는 다른 출판사들과 비교했을 때 Decrescenzo는 현재 어떤 위치에 있다고 생각하세요?
프랑스에는 좋은 책을 만드는 수준 높은 출판사들이 많은데 그 예로 Actes Sud를 들 수 있죠. Zulma나 Picquier 같은 출판사의 경우에도 한국 문학을 정규적으로 출판하고 있어요. 그런 노력에도 불구하고 한국 문학 작품 중에는 아직 알려지지 않은 좋은 글들이 너무 많아요. 어떻게 보면 평범한 출판사지만 decrescenzo의 특징은 프랑스에서 한국 문학만을 다룬다는 점이예요. 단순히 책을 파는 것이 아니라 한국 문학을 통해 그들의 문화를 알리고자 하는 것이 저희의 바램입니다. 하지만 아직은 다른 출판사들 속에서 저희의 입지를 뚜렷하게 드러낼 정도는 아니죠.
출판되는 한국 소설가분들 중에 한국 문학계에서는 유명한 분들이 많으세요.
어떤 식으로 작가분들에게 연락이 가고 작품을 선택하게 되는지 궁금합니다.
작품을 선택하는 부분에 있어서는 작가분의 유명세보다는 어떤 글을 쓰는지, 그 글을 통해 보여주는 문학 혹은 문화의 일면이 무엇인지에 달려 있어요. 오랜 시간 함께 작업하다보면 젊은 작가든 이름이 알려진 작가든간에 서로 좋은 친구가 되죠. 출판사를 열고 몇 년 동안 함께 일하면서 서로 신뢰를 쌓아왔기 때문에 요즘은 작가분들과 함께 작업하는 것이 더 수월해졌어요.
물론 글에서 한국을 느낄 수 있는 소설을 좋아합니다. 한국인의 감수성으로 쓰인 글들요. Decrescenzo는 젊은 작가들이 쓴 작품을 많이 출판하는데 아직 프랑스 문학계에는 거의 소개 된적이 없기 때문이죠. 예를 들어 김애란 작가의 경우 한국에서는 잘 알려져 있는데도 프랑스에서는 두 권의 단편 소설만이 출판됐죠. 얼마 전 저희 출판사에서 김애란 작가의 책을 한 권 출판했는데 곧 두 권이 더 출판될 예정입니다. 물론 젊은 작가들 외에도 프랑스에 많이 알려져 있는 은희경 씨의 단편집 두 권, 50년대 후반을 북한에서 보낸 소설가 이태정 작가 그리고 새로운 문학적 심미관을 보여줬다는 평을 받는 이인성 작가의 소설도 출판될 예정입니다.
외국 도서를 출판하는 과정에 대해서 간단하게 얘기해주실 수 있으신가요?
작가로부터 출판해도 좋다는 연락을 받으면 바로 작가가 소속된 출판사에 연락을 해서 계약서를 작성합니다. 또 소설이 이미 번역되어 있지 않으면 번역하실 분을 찾아야 하고요. 그리고 나서 책 표지 디자인을 구상하죠. 책을 인쇄한 후에는 책 판매처를 알아봐야합니다.
현재로써는 저희 출판사를 더 안정시키고 출판사 이름을 알리는데 중점을 두고 있어요. 굉장히 오랜 시간을 필요로 하는 일이고 출판쪽이기 때문에 더 어렵기도 하죠. 그저 책을 판매하는 것이 목적이 아니라 작가 분들과 문학에 애정이 있기 때문에 할 수 있는 일이라고 생각해요. 앞으로 더 많은 한국 작가들의 소설을 출판할 예정이에요. 그 중에는 방금 얘기한 젊은 작가들도 있고, 아직 비밀에 붙여진 작가들도 있어요. 특별히 규칙이랄 것은 없지만 현재로써는 한국 문학만을 출판하고 있죠. 물론 한국에 관해 쓴 프랑스 책을 출판하는 것에도 관심이 있습니다.
요즘 프랑스에서 일어나고 있는 코리안 붐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언어학 분야에서 교수직을 하다보면 다양한 나라의 문화가 유행이 되는 것을 보게되죠. 아시아에서는 일본이 제일 먼저 문화 붐을 일으켰고 그 다음이 중국이였는데 요즘에는 한국이죠. 케이팝이나 드라마만 인기를 얻고 있는 것은 아니에요. 한국에서도 20년 정도 전부터 한국 문화를 전세계에 알리려고 많은 노력을 해왔잖아요. 일본 점령 이후 한국의 문화 개방은 일종의 자립을 위한 방법이기도 했으니까요.
한국 문화는 다양한 재료들이 적절하게 섞여 좋은 맛을 내는 한 잔의 칵테일 같아요. 거기에는 물론 한국이 원해서 만들어진 이미지도 섞여있죠. 돌연 나타난 ‘한국’이라는 나라는 유교 문화의 엄격함도 가지고 있으면서 과감한 자유분방함도 있어요. 반면에 전통 문화라든지 실존주의 철학이라든지 자연과 함께 영적인 것과 조화를 이루며 살고자 했던 삶의 모습은 많이 사라지기는 했지만요. 물론 한국을 좋아하는 사람들이 한국 본연의 모습도 알고 좋아하는지는 모르겠어요. 하지만 아직 사람들이 한국의 또 다른 모습을 발견할 가능성은 많이 남아있다고 생각해요. 이 땅에 시인이 남아 있는 한은..
한국에서 가장 좋아하는 곳이 어딘가요?
전라도를 좋아해요. 세상과는 동떨어진 곳이죠. 역사적으로 추방되고 내쫓긴 지역이기도 하죠. 전라도하면 음식으로 유명하기도하지만 광주 참사라는 슬픈 역사를 안고 있는 곳이기도 해요. 잊혀진 고장이면서도 반란을 상징하는 학생운동의 배경이 된, 역사적으로 중요한 장소이기도 하죠. 전라도는 판소리의 고장이기도 하고 벼농사로도 유명해요. 그 외에 목축업, 해안선을 따라 곡선을 그리는 굴곡, 위대한 소설가들과 뜨거운 태양, 흉내내기 힘든 광주 사투리가 기억에 남아요. 전라도는 개인적으로 제가 자란 지방을 떠올리기도 해서 일 년에 두 세 번 한국에 갈 때마다 들르는 곳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