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정한 코 끝. 소녀의 모습은 정적이다. 고요함 속에 작은 새 한마리가 날아와 그녀의 머리 위에 앉는다. 둘은 말이 없다. 황금빛 이 둘 사이의 적막감을 통째로 집어 삼킨다. 꽃이 핀 나뭇가지가 의미하는 따뜻한 봄의 정경. 새침한 단발머리를 한 소녀의 시선에 담긴 것은 어린아이다운 호기라기 보다는 쓸쓸함이다.
어 린 시절 서울에서 자란 박항률 화백은 그림 공부를 하고 싶었고 그에 반대하는 아버지가 진로를 바꿔보라는 뜻으로 그를 잠시 시골로 내려 보내게 된다. 조용한 기찻길, 봄에 피어나는 아지랑이들. 이런 시골풍경은 어린 사춘기 소년이었던 그에게는 더욱 섬세하게 다가온다. 화백의 붓끝을 따라 그려지는 소녀의 모습은 그의 어린시절 기억 속 사촌 누이를 많이 닮았다. 누이는 책읽는 것을 참 좋아했다. 그가 서울에 올라 오면서 함께 따라온 그녀는 얼마되지 않아서 세상을 떠났다. 작은 새, 꽃과 나비는 그 누이의 이미지를 닮아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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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RK Hang Ryu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