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은 사기다란 그 말에 동의한다. 한마디로 사기를 잘 치는 작가가 좋은 작가, 유명한 작가가 되는 게 현실이다. 하지만 난 그와 반대되는 작가가 되고 싶다. 최대한 사기를 치지 않는 작가, 천천히 해나가는 작업과정 자체가 작품인 그런 작업을 하고 싶다. 한마디로 말이 필요 없는 그런 작품을 만들고 싶다.”
조각가 이재효는 사람들에게 익숙한 나무, 돌, 못을 재료로 작업을 한다. 그리고 그 안에 자신을 반영하기 보다는 최대한 ‘나’를 배제시킨 채 재료의 성질이 이끄는대로 형태를 찾아 나간다. 나무의 투박한 껍질, 그 안에 숨겨진 부드러운 속, 아름답게 얽혀 있는 선들을 기하학의 틀에 넣어 다시 바라봄으로써 재료의 모습은 오히려 선명하게 다가온다.
거대하고 단호한 틀에 반하여 그 안에 담긴 재료의 모습은 셀 수 없을 만큼이나 다양하다. 그리고 비어있음과 차있음이 공존하며 그의 작업은 다시 커다란 하나의 형태를 구성한다. 이재효 작가는 자신의 작업이 보는이에게 난해하게 느껴지기를 바라지 않는다. 작업에서 자주 볼 수 있는 구형은 어느 곳에서 바라보아도 같은 형태를 그려낸다. 반복되는 재료 사이에서 생겨나는 질감, 결이 만들어내는 그늘은 그의 손을 통해 재구성된, 자연 스스로가 담고있는 질감이다.
1965년 합천에서 태어나 1992년 홍익대 조소과를 졸업한 이재효 작가는 현재 조각가로 활동하고 있는 부인 차종례씨와 양평에 있는 작업실에서 거주하고 있다.
인터뷰
까이에 드 서울: 어떤 계기로 지금의 작업을 시작하게 되었는지 궁금합니다.
이재효: 뚜렷한 계기는 없었습니다. 1991년 대학교 4학년때 우연히 돌을 메달아 긴 터널 형태의 작품을 제작했고, 그 다음 해 졸업하고 나무로 둥근 구형의 작품을 만들면서 그 후 몇 년 동안 작품 대부분이 시작되었습니다.
작업의 형태에 어떤 의미가 있나요?
작업의 시작은 계획이나 의도, 혹은 어떤 개념으로부터 시작하지 않고 우연히 어떤 재료를 발견하면 그때부터 시작됩니다. ‘나’의 이야기는 철저히 배제한 채 그 재료에 가장 어울리는 형태, 그 재료의 성질, 에너지, 아름다움 등을 가장 잘 보여 줄 수있는 형태를 찾는 작업입니다. 그렇게 ‘나’의 이야기를 다 빼고나면 모두가 공감할 수 있는 부분이 재탄생하게 됩니다.
돌. 철. 나무. 못 – 각 재료를 다룰 때마다 담게 되는 주제나 그 재료를 다루는 태도가 다른지도 궁금합니다.
자연에서 얻을 수 있는 재료를 선호합니다. 그 이유는 자연물은 똑같은 두 개가 있을 수 없어 다양하기 때문인데 제 작업은 그런 사소한 것들이 수 없이 많이 모여서 한 개의 작품을 만듭니다. 제 작품에는 주제는 없고 재료만 있을 따름입니다.
작업에 영감을 주는, 혹은 영향을 받는 소재가 있나요?
미술관에서 전시를 관람하는 것도 좋아하지 않고, 책 읽는 것도 좋아하지 않습니다. 바다를 보고, 산을 보고, 밤 하늘의 별을 보고, 비를 맞고, 눈을 맞으며 그저 나의 감수성을 그대로 유지시키는것이 중요하다 생각합니다. 이성 보다는 감성이 모든 것을 합니다.
작업을 하시면서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점은 무엇인가요?
작품성 못지 않게 온전한 작가적 삶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좋은 작품으로 사람들에게 감동을 주는것도 중요하지만 작가의 한 마디 한 마디 말들이 사람들에게 더 많은 것을 느끼게 할 수 있어야 된다고 생각합니다.
마지막으로 서울에 대해서 어떤 인상을 가지고 계신가요?
다이나믹합니다. 가장 바쁘게 움직이는 도시, 세계에서 가장 바쁜 사람들이 모여사는 도시. 무한한 가능성과 끝도 없는 무기력이 공존하는 도시라고 생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