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시절은 의외의 놀라움, 신비와 호기심, 감동에 넘친 지루하지 않은 한 페이지다. 그리고 우리는 몇 살이 되어도 그 장을 펼쳐보고 싶어진다.’ 수필가 전혜린의 글에는 유년기에 대한 동경이 한없이 녹아있다. 학교 – 어린시절 그저 커다랗게만 보였던 그 학교가 어른이 되어 다시 가보면 그저 작고 초라하게만 느껴진다. 기억 저편으로 잊혀졌던 짝궁의 얼굴도 선명하게 떠오르고 유년시절 별것도 아닌 일에 울고 웃던 기억들이 머릿속을 스쳐지나간다. 어른이 되었다고 믿었던 그 시절 졸업앨범 속 나는 그저 앳된 어린 아이의 모습이다.
‘향(HYANG)‘ 공예 프로젝트를 통해 디자이너로도 활동하고 있는 재일교포 3세 김인숙 작가는 일본에 있는 히가시오사카조선 초중고등학교를 다녔다. 까만 치마에 흰색 저고리를 입고 – 일본이라는 타국에 위치한 조선 인민 학교는 여러 이데올로기의 경계가 묘하게 얽힌 장소. 친근하게 ‘우리학교’로 불리는 이곳에서 ‘우리말’을 배우고, 사회라는 테두리 밖으로 나간 그녀가 타인의 눈에 ‘일본인’도 아니고 ‘한국인’도 아닌 제 삼자로 비춰진다. 한국인이 자신이 잘 알고 있는 한국의 모습을 찍고 일본인이 일본을 찍듯이, ‘학교’라는 – 익숙한 공간이지만 조선학교라는 이유로 타인에게는 낯선 공간으로 느껴지는 자신의 모교를 직접 사진기에 담기 시작한다. 경쾌한 웃음, 즐거워 보이는 아이들. 모교에 대한 애정이 사진 속에 자연스럽게 녹아있다. 10년 이상 계속되는 그녀의 SWEET HOURS 사진속에서 아이들은 조금씩 성장하고 있다.
sweet hours – 변함없이 반복되는 학교의 하루를 담은 작품
– ‘사이에서’는 재일교포 가족의 초상을 담는다. 형제와 자매, 아버지와 어머니, 할머니, 할아버지, 어린 손자까지 – 가족 모두가 모여 카메라를 정직하게 바라보는데, 그 모습에는 세대가 바뀌어도 지키고자 하는 무언가가 담겨있다. 작은 일본식 다다미 방에 색동 한복을 입고 있는 어린아이, 제삿상, 한복을 입힌 인형. 때로는 일본사람에 가까워 보이는 화장이나 옷차림. 지키고자 하는 무엇과 삶에 자연스럽게 녹아있는 무엇 – 그 둘 ‘사이에서’ 생활하는 교포들의 모습을 여과없이 보여준다.
BETWEEN, 사이에서
– 학교에 대한 기억을 공유하는 프로젝트 ‘추억의 시간표’는 김인숙씨와 김명권 부부에 의해 공동으로 기획되었다. 80년대의 모습이 여전히 남아있는 창동을 배경으로 초등학교 학생 100명을 대상으로 4주동안 진행된 워크숍. 그 지역에 거주하는 주민들의 어린시절의 기억과 창동의 옛 모습을 수집해 소년들에게 들려준 후 각자가 상상한 옛 소년의 모습으로 변신해 연출한 사진촬영 프로젝트다.
CONTINUOUS WAY, 소년이 소년들에게
“님에게 드리는 편지”
그리운 님이여 잘 지내시죠?
사랑하는 아빠 엄마 곁을 떠나
벌써 1년이 되어 갑니다.
일본에서 민족학교 다니면서
말을 배웠는데…치마저고리를 입고 학교를 다녔는데..
치마저고리하면 친구들이 웃어요.
한복이라고 해야된데요.
여기서도 나는 외국인 같아요.
한국어가 서툴러서 답답해요.
님이여, 내 말은 그 때보다 늘었을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