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슴은 번식기를 앞두고 뿔의 성장 상태가 절정에 이른다. 수태한 이후에 뿔은 탈각돼 땅에 떨어져 다른 생명체들의 칼슘 공급원이 된다. 나무처럼 뿔에도 생사가 공존하고 있다.”
김명범 작가의 작업에서 사물은 ‘삶’이라는 시간의 연속선상에 놓이게 된다. 그리고 성장과 퇴화처럼 상반되는 것처럼 느껴지는 요소들도 이 삶이라는 사이클 안에서는 서로 연결되어 있다는 사실을 상기시켜 준다. 무성하게 성장한 뿔을 단 사슴의 얼굴은 죽음을 의미하는 듯 뼈만 앙상하게 남아있다. 작가는 시소 (SEE – SAW)의 움직임처럼 화려하게 꽃 피웠던 과거와 이제는 퇴색되어 죽음에 가까워진 모습을 하나의 오브제 안에 담아냄으로써 단절되었던 시간을 다시 이어준다.
인터뷰
까이에 드 서울: ‘우리가 마주칠 수 있는 모든 것에는 고유의 영혼이 있다’라는 생각에서 작업이 시작되었다는 글을 읽은 적이 있습니다. 어떤 주제로 작업을 하고 계신가요?
김명범: 제 주변의 모든 일상의 것들에 관심을 가지고 그것들과의 내밀한 대화를 통해 작업을 이끌어나가고 있습니다. 지금도 답을 찾아나가는 과정에 있지만 그 과정의 중심점이자 시작점을 저 자신으로 두면서 그 방향성을 찾을 수 있었습니다.
묘하게 닮았지만 다른 두 소재를 하나의 오브제로 다루는 작업이 인상적입니다.
어릴 때의 상상의 기억을 바탕으로 단순한 형태의 유사성이 아니라 그것들이 자라고 때가 되면 탈락되는 속성의 유사성과 그것들이 지니고 있고 제게 주는 은유적 의미들의 결합에 주목을 했습니다. 제 주변의 사물들이 제게 어떤 의미로 다가오는지가 제가 소재를 선택하는 주요 이유입니다. 주로 제가 좋아하고 자주 마주치며 대화를 나누는 것들이죠. 물론 일상의 기억들이 바탕이 되거나 제 자신이나 심정을 대변하는 것들이 대부분이기도 합니다.
작업을 할 때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점은 무엇인가요?
시작점인 제 자신과 일상의 주변입니다.
초기의 작업도 지금과 같은 주제로 진행되었나요?
예전에는 답을 조금은 먼 곳에서 찾기 시작했던 것 같습니다. 주제와 표현방식은 비슷하지만 주체에 대한 생각을 요즘 더 하게 되었습니다. 다시 말하자면 멀리서 시작해서 한 바퀴 돌아서 시작점으로 오게 된 것입니다.
작업이 특정 예술사조(Art Mouvement)에 속한다고 생각하시나요?
시카고와 서울을 자주 왕래 하시는데 두 도시에서 작업이 같은 방식으로 받아들여지는지 궁금합니다.
물론 관객들은 제 작업을 보며 특정 예술사조라고 말씀하시는 분들도 계시지만 제 스스로는 특정 예술사조로 규정하여 속한다고 생각해 본적은 없습니다. 제 작업이 주변 환경과 경험에 영향을 많이 받기에 그 장소마다 느끼는 것들이 많이 다릅니다. 때문에 그 환경의 변화에 관한 이야기를 작업으로 풀어나가는 경우도 있습니다.
작업에 영향을 받은 혹은 영감을 받는 소재가 있나요?
저는 평소에 작품들뿐만 아니라 정말 많은 것들을 보는걸 즐깁니다. 모든 장르의 영화나 만화, 패션잡지, 광고, 사진,쇼, TV, 주변의 다양한 환경과 사물 등등을 최대한 많이 보고 이런 다양한 시각적 경험들이 작업에 영감을 줍니다.
마지막으로 도시 서울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세요?
친구들과 서울은 즐거운 지옥이라고 이야기 한적이 있습니다. 지금도 그렇게 생각합니다.
노동을 상징하는 ‘삽’은 젊은이를 떠올리지만 지팡이는 힘 없는 노인을 떠올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