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 이광호의 작업은 재료에 대한 호기심과 탐구로부터 시작된다. 평소 눈에 들어왔던 평범한 재료를 가지고 그 재료의 특성을 예상하지 못한 방식으로 풀어낸 작업들이 많다. 유년시절 조부모의 시골 농장에서 자라 자연에서 채취한 소재를 가지고 뭔가를 만드는 것에 익숙한 그는 직접 작업에 뛰어들어 완성되기까지 재료에 대한 탐구를 계속해나간다.
그가 어린시절을 자연에서 보냈다면 지금 작업실에 놓인 재료는 플라스틱, PVC, 스티로폼 같은 – 이미 그 기능이 규정되어버린 산업재료들이다. 일상에 스며든 익숙한 재료들이라도 우리가 예상하지 못한 방식으로 다시 풀어내 같은 소재지만 그 모습을 새롭게 드러나게 해준다.
2013년 예올 젊은 공예인상을 받으며 제작하게 된 ‘새로운 갑옷’ 시리즈는 나무에 주로 사용되는 전통 옻칠 기법을 청동에 접목시킨 작업이다. 갑옷이 주는 ‘강함’의 이미지와 사람의 신체에 맞춰 만들어진 갑옷의 어깨, 배 부분의 유선형을 새롭게 재해석하여 표현했다.
new armor series, 2014
skin, enameled copper series, 2013
인터뷰
어떤 주제로 작업을 하고 계신가요?
저는 대단한 영감을 가지고 작업을 하는 사람은 아닌 것 같아요. 어떤 재료를 보고 ‘이 재료로 뭔가를 만들어보면 어떨까’해서 작업이시작됐던 적이 더 많아요. 재료 상가를 돌아다니거나 예전부터 항상 써보고 싶었던 소재를 가지고 작업을 시작해요. 작업 자체가 단품으로 끝나는게 아니라 연작이기때문에 점차적으로 그 재료의 성질에 깊게 접근하게 되는 경우가 많아요. 한 순간에 좋은 결과가 나오지는 않는다고 생각해요. 그렇게 작업을 계속 하다보면 저한테 맞는 색이나 작업 방식이 구체적으로 형성되요.
작업 주제는 항상 같아요. 재료를 접할 때마다 ‘이 재료의 성질을 나는 어떻게 표현해낼 수 있을까.’에 대한 고민을 항상하고 있어요. 남이 썼으니까 나는 못쓴다라기보다는 ‘나는 어떤 방식으로 접근할 수 있을까.’라는 생각을 많이 해요. 작업마다 바뀌는 것은 색이나 형태, 작업 소재 같은 거예요. ‘이 재료를 쓰다보니까 저 재료도 더 쉽게 사용해볼 수 있겠다’라던지. 이런식으로 재료 선택에 대한 거부감이 많이 없어지는 것 같아요.
작업에 사용하는 색은 어떻게 정해지게 되나요?
사실은 제가 색약이라 빛에 따라서 사물 본래의 색과 제 눈으로 보는 색이 다르게 보이기도 하고 빛이 거의 없을 때는 검은색으로 보이기도해요. 그래서 재료를 사러갈 때는 정확한 색을 사기 위해 색 번호를 적어가요. 원래부터 원색을 좋아하기도 하지만 그런 이유로 흰색, 적색, 청색, 녹색 같이 제 눈에 확실하게 보이는 원색들을 작업에 많이 사용하는 것 같아요.
플라스틱, 스티로폼. 산업재료를 주로 사용하시는데 자연소재의 재료를 사용해서 작업하실 생각도 있으신가요?
자연은 그냥 자연 그대로가 아름답다고 생각해요. ‘자연스럽다’라는 말도 ‘스럽다’라는 거잖아요. 작업을 하는 사람으로써 제가 할 수 있는 건 어떤 기법이 특정 재료를 만났을 때 우리가 알고 있는 그 재료의 텍스쳐나 성질이 어떻게 바뀔 수 있을까에 대한 탐구 정도인 것 같아요.
학생일 때 작업은 어땠는지 궁금해요.
금속공예 전공이라서 원래는 장신구 디자이너가 되고 싶었어요. 학생때는 장신구 작업이 위주였고 관심도 많았는데 4학년 때 조명, 가구디자인 수업이 있었거든요. 그 수업을 신청하게 된 것이 지금까지 작업을 이어오게된 계기가 됐어요. 학생때는 테크닉 위주로 작업을 했었어요. 지금도 기회가 되면 장신구 디자인을 해보고 싶기도 해요.
어떻게 금속공예를 전공할 생각을 하셨나요?
예전부터 뭔가를 만드는 것을 좋아했어요. 고등학교때까지는 음악을 듣거나 영화를 보면서 혼자 보내는 시간이 많았어요. 미대를 갈 수 있을거라는 생각은 못했었죠. 그런데 한 친구가 미대에 가보면 어떻겠냐는 말에 뒤늦게 준비를 시작했어요. 솔직히 말하면 그때는 금속공예를 해서 나중에 좋아하는 사람이 생겼을 때 목걸이라던가 귀걸이를 만들어주면 좋겠다-라는 생각에 금속공예과가 있는 학교들만 지원하게 된거죠.
작가로써 작업을 하시는건지 디자이너로써 작업을 하시는건지.
처음 작업을 시작했을 때는 그 점에 대해 생각해보기도 했었어요. 제가 디자이너인지, 작가인지. 지금은 그런 것을 구분 짓는다거나 하지는 않아요. 오히려 경계란 말이 저한테는 어색한 것 같아요. 뭔가를 만들고 그러면서 어떤 재료를 가지고 원래 가지고 있는 형태와는 다른 모양을 만들어내는 그 과정이 저한테는 재밌어요. 제가 디자이너인지 작가인지에 관한 문제는 오히려 제 작업을 사용하는 사람들의 몫인 것 같아요. 그걸 제가 규정해서 ‘이건 이거다’라고 얘기하는 것은 아직까지는 이르다고 생각해요.
마지막으로 도시 서울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세요?
서울, 저는 좋은 것 같아요. 여기서 계속 살았고 서울에서 작업을 쭉 해오고 있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제 작업 패턴이 여기서 형성됐다고 생각해요. ‘내가 한국사람이니까 한국적인 작업을 해야겠다’라는 생각보다는 그냥 내 작업을 하다보면 그게 한국적인 것이 아닐까라는 생각이 들어요. 외국에서 작업을 해보고 싶다는 생각도 있지만 여기서 하는편이 자연스러워요. 도와주는 친구들과도 오랫동안 알고 지낸 사이고. 작업하기에 가장 좋은 환경을 저 스스로도 계속해서 만들어가고 있는 것 같아요.
지금 SUPPLY SEOUL이라는 이름으로 기획도 하고 있어요. 이제 시작한지는 두 달밖에 안됐는데, 서울에서 뭔가를 새롭게 할 수 있는 걸 지인들과 함께 준비해서 보여주기도하고. 특정한 공간에 일어날 수 있는 모든 것들을 기획한다는 의미에서 시작했어요. 지금 전시하고 있는 공간은 그래픽하는 친구들이 공간을 반으로 나눠서 윈도우 갤러리를 만들었어요. 거기서 두번째 전시를 했고 다음달에 하게될 전시는 일본친구들이 와서 함께 팝업바를 할 예정이에요. 그런식으로 뭔가 새로운 것을 서울에서 시도해보는게 좋은 것 같아요.
서울에서 좋아하는 동네나 가게가 있다면요?
원래는 홍대쪽에 계속 있다가 거기가 너무 관광지처럼 변하고 비싸지기도하고. 그래서 작업하기에 더 맞는 장소를 찾다가 친구들과 마음이 맞아서 여기에 오게 됐죠. 저는 그냥 제 작업실이 좋아요. 가게는 을지로 재료상가를 자주가요. 이렇게 큰 규모로 한 곳에 모든 재료상가가 몰려 있는 곳이 외국에서도 거의 없다고 하더라고요. 여러 재료들을 한 곳에서 살 수 있어요.
obsession series,
knot – beyond the inevitable series, 2009 – 2011
http://www.kwangholee.com/
http://supplyseoul.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