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픔과 고통의 휴유증은 오래간다. 차곡차곡 정리해 오래된 벽장 속에 깊숙히 넣어둔 밋밋한 기억 속에서 ‘어떤’ 물건 혹은 장소에 대한 기억만이 선명하게 표면 위로 떠오를 때가 있다. 작가 이진주씨는 그 기억들을 하나하나 꺼내어 한 폭의 풍경으로 그려낸다. 그 풍경 속에는 문맥나 원근법 같은 요소는 부재한다. 문득 떠올리는 ‘기억’이라는 것 자체가 ‘과거’라는 자신의 문맥에서 떨어져 나간 파편 조각 같은 것이기 때문이 아닐까.
“저는 끈질기게 남겨지는 부정적 기억에 대해 관심이 많아요. 기억은 심리학자 다우베 드라이스마의 말처럼 마음 내키는 곳에 드러눕는 개와 같아요. 별로 상기하고 싶지 않지만 불현듯, 어쩔 수 없이, 의도와 관계없이, 어떤 상관관계도 없이, 불쑥불쑥 튀어나오는 감정이나 기억들, 일상 속에서 환기되는 인간의 감정과 기억이 어떻게 작동하는지, 또 그 이유와 장치와 과정은 무엇인지, 왜 하필 부정적인 사건은 강렬하게 기억에 새겨지는지, 왜 그토록 기억은 불안정하고 탈맥락화 되어있는지, 이런 수많은 질문들 속에서 저의 작업이 시작하는 것 같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