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용준의 사진 속 도시는 서로 다른 형태와 패턴이 우연히 맞춰진 퍼즐처럼 보인다. 전형적인 미적 아름다움과는 거리가 있어 보이지만 그가 찾아낸 ‘우연히 맞춰진 도시’의 모습은 경쾌하고 유머러스하다. 건축가의 손이 닿지 못한 초대형 도시의 완벽하지 못한 설계가 드러나는 이 이상한 풍경들은 차갑고 인위적인 모델 하우스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디테일의 부재, 선의 완벽함, 장면의 중립성 속에서 사람의 흔적은 사라지고 추상적이고 평면적인 패턴이 된 구조물에 시선이 집중된다.
그의 사진집 ‘Location’은 장소를 기록하는 형식으로 구성되어 있다. 작가는 먼저 구글 지도를 통해 가상으로 도시를 여행하며 건축물을 탐구한다. 그리고 원하는 이미지를 얻을 수 있는 주위의 장소를 관찰하고 그가 발견한 오브제를 기록하기 위해 이동한다. ‘유명함’과는 거리가 먼 이 건축물들은 따로 불릴 수 있는 특별한 이름은 없는 듯하다. 대신 위도와 경도의 숫자만이 이름 없는 건축물들의 정확한 위치를 기록한다.
건축물이나 건축 사진에 처음으로 관심을 가지게 된 계기가 있나요?
사실은 건축 사진에 관심이 있었던 건 아니고 ‘건축’에 관심이 있고 ‘사진’에 관심이 있었어요. 제가 불어과를 나왔는데, 당시 학부에 이미 프랑스에서 살다 와서 불어를 너무 잘하는 친구들이 많았거든요. 저는 과에서 약간 부적응자였어요.
대신에 도서관에 가서 예술 코너에서 책 보는 걸 좋아했어요. 이렇게 두꺼운 책들 있잖아요. 그 책들을 보면서 건축이랑 사진에 관심을 갖게 됐어요. 당시에 건축으로 학부를 다시 갈까 사진으로 대학원에 갈까 고민했는데, 건축과로 학부를 새로 시작한다는 게 무섭더라고요. 이제 곧 서른인데. 그래서 조금 더 현실적인 선택이 사진으로 대학원에 가는 거였어요.
그러고 나서 대학원이 끝났는데 사실은 너무 길이 안 보이는 거예요. 그때는 ‘건축할 걸 그랬나’하는 생각도 들었는데 지금은 또 사진 하길 잘 했다는 생각이 들어요. 사실 시기마다 왔다 갔다 해요. (웃음) 건축을 한 친구들이 힘든 시간 시간을 보내고 자기 스튜디오를 내면서 자기 건물을 만들기 시작했거든요. 분야별로 좋은 시기가 있는 것 같아요.
어떻게 처음 건축 사진 일을 시작하게 됐나요?
대학원 다닐 때 독일에서 산업 건축물을 촬영하며 활동한 사진작가 배허 (Becher) 부부나 토마스 데만트 (Thomas Demand) 같은 사진작가를 좋아했어요. 개인작업으로 건축물을 주제로 촬영하면서 아르바이트로 매장 찍는 일을 하게 됐는데 이 일이 저랑 잘 맞는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당시 한국에서 활동하는 사진작가는 건축과 인테리어, 이 두 부류로 나뉘었다고 생각하거든요. 잡지 ‘공간’에 실리는 사진처럼 건축만 찍는 작가와 개인 스튜디오를 운영하면서 상업공간이나 인테리어 사진만 찍는 작가 이렇게요. 지나고 보니까 일부로 의도했던 건 아닌데 제 사진은 그 중간을 파고들었던 것 같아요. 그리고 새 건물을 짓기보다 리뉴얼 프로젝트가 많았던 시점이기도 해서 실내 공간을 찍는 사진작가를 많이 찾았어요. 그게 제가 사진작가로 처음 자리를 잡게 된 배경이 됐던 것 같아요.
로케이션이란 책은 언제부터 작업하신 건가요?
구상을 먼저 하고 찍은 건가요 아니면 찍다 보니까 이걸 모아서 책을 내면 좋겠다는 생각이 든 건가요?
Location에 사용된 사진은 2016년부터 한국과 일본, 홍콩과 중국에서 7-8년 동안 작업한 사진이에요. 반반이었던 것 같아요. 처음에는 딱 형식을 갖춰서 계속 같은 걸 쭉 찍으려고 했는데, 계속 그렇게 하면 너무 위성 도시 같아서 변화를 주려고 약간 틀에서 벗어난 사진들도 같이 소개하게 됐어요. 반대로 « The Elements »는 좁게 찍은 사진을 위주로 담았는데 극단적으로 양쪽을 더 보면 재밌다고 생각했거든요.
촬영을 가기 전에 구글맵으로 일일이 다 찾아 보나요 ?
네, 엄청 찾습니다. 구글맵이랑 한국에서는 카카오 지도 3D가 잘 되어있어요.
어떤 건물을 찍고 싶다고 하면 먼저 구글맵으로 찾아보면서, 여기는 나무에 가려서 안 보이겠다, 여기 차가 못 들어가니까 안 보이겠다. 이렇게 사진을 찍을 수 있는 지점을 찾는 거죠. 촬영을 하러 가기 전에 미리 시뮬레이션을 해서 가는데 대부분 맞는 경우가 많죠. 근데 제가 지도를 보는 걸 너무 좋아해서 지도를 그냥 맨날 봅니다. 취미 생활로요.
어떤 건물을 보면 촬영하고 싶나요 ?
건축가의 의도가 너무 많이 들어가지 않고, 그 지역 사람들이 이렇게 저렇게 만들다 보니 조형적인 부분이나 컬러가 랜덤하게 조합을 이루는 건물을 좋아해요.
건축물에 나라마다 특징이 있을까요?
제 생각에는 2010년대 이후의 건축물은 중국이나 한국이나 일본이나 좀 비슷한 것 같아요. 유리에 금속마감의 커튼월이 많아서 뭐랄까, 다 똑같아서 재미가 없어요.
그런데 그전에 지어진 벽돌, 타일, 콘크리트로 지어진 건물들은 차이가 있거든요. 아무래도 일본은 굳이 저래야 되나 싶을 정도로 각이나 디테일이 좋아요. 한국, 홍콩 중국은 쓰는 색이 엄청 다르다고 해야 되나요. 한국은 건물이 좀 컬러가 없는 편이고 있어도 브라운 톤이나 붉은 톤의 흙이 섞인 컬러가 많아요. 근데 일본은 약간 파란색이나 초록색으로 좀 더 원색이 많고 중국은 하늘색 같은 채도가 높은 색이 많으면서 약간 파스텔 톤이면서도 색이 강해요.
사진 찍을 때 기억에 남는 에피소드가 있나요?
보통 옥상에 가서 사진을 촬영하는 경우에는 구글 지도를 보면서 담배 피우는 곳이 있는지 없는지를 보면서 출입 가능한 옥상인지 아닌지를 알 수 있거든요. 그런데 한번은 도쿄에서 제가 이 건물은 이 느낌이고 이 옥상에 올라가서 찍으면 되겠다 해서 건물 엘리베이터의 맨 위층을 딱 누르고 탔는데, 직원이 한 40명 되는 사무실 한가운데에서 엘리베이터 문이 딱 열리는데 모두 저를 쳐다보는 거예요. 그래서 죄송합니다 하고 문을 닫고 내려왔죠. 거기선 사진을 못 찍었어요. (웃음)
근데 이게 아시아니까 가능하지 유럽에서는 웬만한 건물은 코드가 있어서 못 들어가요. 모르는 건물 들어가서 사진을 찍다보면 경비아저씨한테 많이 혼나요. 예전에 산책론이라고 독립출판으로 만들어진 책이 있거든요. 책 저자가 오래된 건물을 구경하는 걸 좋아해서 몰래 들어가서 안을 구경하고 그래요. 저처럼 그런 취미를 가진 사람들이 좀 있더라고요.
홍콩 같은 경우는 옥상에서 프리러닝을 하는 외국인들이 있어요. 이 사람들 유튜브를 보면 다큐멘터리처럼 건물에 어떻게 들어가는지 이런 게 다 나오거든요. 약간 제가 겪는 상황이랑 비슷해요. (웃음) 저는 일단 그렇게 위험한 행동은 안 하지만 어쨌든 참고는 됐어요.
기회가 된다면 해보고 싶은 프로젝트가 있나요 ?
올해 LOS ANGELES PALM SPRING 쪽에 갔었는데 아무것도 없이 길 하나만 있는 풍경을 보니까 사진 작업을 해보고 싶은 생각이 들었어요. 아무것도 없고 선만 있는, 좀 거친 미국 옛날 사진 같은 작업이요.
압도적으로 좋아하는 작가가 에드워드 루샤(Edward Rusch)거든요. The Museum of Contemporary Art에서 만든 유튜브 영상을 보면 제목이 ‘Buildings and Words’예요. 이 사진작가의 주 토픽인 거죠. 60년대 70년대 때부터 찍은 사진을 모아서 스몰북으로 만들기도 했는데 사진 독립출판에서 선구자적인 역할을 했어요.
의뢰받은 사진 작업 중에서 기억에 남거나 재밌었던 프로젝트가 있을까요?
지금 하는 프로젝트요. 촬영 일정이 많고 범위가 넓어서 고생스러운 면이 있긴 한데요. 이번 서울 건축 비엔날레 주제가 흙인데 광화문에 설치하고 있는 조병수 건축가의 파빌리온을 짓는 과정을 처음부터 완성까지 촬영하는 일이에요. ‘흙’이 주제인 만큼 한국의 토양에 대한 이야기를 담다 보니까 실제로 전남 해남, DMZ에서 흙을 퍼 왔거든요. 그런 과정을 다 촬영하다 보니 이동할 일이 많아요. 그런데 뭔가를 꾸준히 찍으니까 힘들어도 재미는 있더라고요.
마지막으로 도시 서울에 대해서 정의 한다면요?
서울은 뭔가 통일되지 않고 서로 섞여 있어서 좀 정신없는 도시 같아요.
저도 서울 사는 사람인데도 ‘여기는 뭐지 ?’ 이런 곳도 있어요.
그런데 그렇게 좀 정리가 안 되고 또 어떻게 보면 엉망인 모습을 사람들이 좋아하는 것 같아요.
서울에서 어느 동네를 좋아하세요?
여기 약수동이요. 여기서는 남산도 가깝고 이태원도 가깝고 광화문도 안 멀고.
그런데 서울 중심에 있는 거에 비해서 월세가 되게 싸요. (웃음)
좋아하는 동네 중에 하나는 서촌이에요. 조용한 버전의 서울 같거든요.
@___yjc