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주 작가의 그림을 볼 때는 사물의 표정을 천천히 마주하게 된다. 무덤덤해 보이지만 그림마다 호기심, 즐거움, 지루함 같은 다채로운 감정이 숨어있어 그림 속 오브제에 대한 그녀의 애정이 느껴진다. 특별한 이야기가 떠올라 작업을 시작한다기 보다는 평상시 눈에 들어왔던 익숙한 소재와 그녀의 작업실 풍경이 그림이라는 공간 안에 다시 재구성되면서 시작되는 작업이 많다.
세라믹 작업을 병행하고 있는 이미주 작가는 현재 서울과 바르셀로나에서 활동하고 있다.
INTERVIEW
이미주씨의 작업 세계를 소개해 주세요. 어떤 그림을 그리고 있나요?
제 작업세계는 어떠한지 많이 고민했는데요, 그냥 저 인 것 같습니다. 그럼 ‘너는 어떠한 사람이냐’ 라고 물어본다면 ‘정의 내리기 힘들다.’ 라고 대답할 것 같습니다. ‘너의 이런 면이 좋은 거 같애.’ 라고 하면 그런가 보다 라고 생각이 들다가도, 그 생각을 하면 더이상 ‘좋은’ 이 그냥 좋은 것이 아닌 것 처럼.
저의 작업은 ‘나를 말(언어)이 아닌 다른 매체를 통해 표현 하는 것’ 이라고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그림 일기처럼 어느 순간을 기억하고자 작업에 임할 때도 있고, 햇살이 포근한 아침, 책상에 앉아 끄적끄적 무언가를 그리기도 합니다. 내 마음을 몰라주는 애인 때문에 속상해 분노의 칼질을 하기도 하고, 자주 못보는 가족을 생각하며 아련한 마음으로 붓을 들기도 합니다. 생각이 너무 많아서 이것도 저것도 손에 잡히지 않을땐 앞치마를 매고 점토를 만집니다. 매끈한 표면을 구현하는 것, 또는 거친 텍스트를 만드는 것, 이런 반복적이지만 섬세함을 요구하는 행동에 오롯이 집중하는 것은 마치 북적북적한 도시에서 우연히 고요한 골목에 들어섰을 때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이런 느낌과 상상들을 말이나 글로서 다 표현 할 수 있었더라면 아마도 다른 걸하고 있지 않았을까..
대학에서 산업디자인을 공부했는데 무언가를 만들어내는 것을 좋아했지만 괜찮은 제품디자인을, 저도 만족할 만한 물건을 만들어 냈는지는 모르겠습니다. 그 후에 더 개인적인 작업을 시작하게 되었을 때에도 늘 손으로 무언가를 만드는 것에 대한 열망이 있었습니다. 평면 작업이 상상의 나래를 펼치는 장이라고 한다면 도자기 작업은 그 상상의 또는 내면의 스케치들을 내가 숨쉬는 세상으로 끄집어 낸 것이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 ‘그림에서 툭 튀어나온’ 이란 흔한 표현처럼 살아있을 것만 같은 그런..
공간과 초상화 작업이 많이 보여요. 그림의 소재와 이야기는 어디에서 찾으세요?
많이 보는 것들을 자주 이야기하게 되는 것 같습니다. 사람들을 만나고, 관찰하고, 그들과 부대끼면서. 집 또는 작업실에 오래 있다보니 그곳에 있는 것들을 그리고, 만들게 됩니다. 별로 눈에 들어오는 게 없을 땐 잡지 책도 봅니다.
가장 기억에 남거나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작업이 있다면 소개해 주세요.
지금 하고 있는 작업입니다. 했던 작업에 애착을 가지니까 자꾸 거기에 머물게 되는 거 같아서 되도록이면 지금 하고자 하는 것에 집중 하는 편입니다. 새로운 무언가를 이야기 하려고 할 때, 그것이 억지스럽지 않고 자연스럽게 흘러나온 것이라면 더욱 설레고 신이 납니다. 설레임은 작업의 큰 원동력 같습니다. 지금은 ‘Out of frame´ 이라는 타이틀로 프레임 밖으로 나와 무질서하게 재 조합된 요소들에 대한 작업을 하고 있습니다.
영향을 받은 혹은 좋아하는 작가나 작업이 있나요?
좋아하는 작가는 셀 수 없이 많습니다. Milton Avery, Sanyu, Pierre Bonard,Matisse,Jockum Nostrum, Mama Anderson, Tal R, Calder, Philippe Weisbecker 부터 James Castle, Bill Traylor, Aloïse Corbaz 같은 아웃사이더 아티스트 등. 그 외에도 좋아하는 모든 작가들의 영향을 받았다고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정말 좋아해서 흉내도 내보고 그들 앞에서 한없이 작아 지기도 하는데, 보고 듣고 마시는(?) 모든 것이 저의 작업에 영향을 미쳤으리라 생각합니다. 훌륭한 작가들을 존경합니다. 그들의 작업이 분명히 알게 모르게 제 작업에 큰 영향을 준 것을 인정하고 그안에서 또 새로운 나만의 무언가를 만들어 내려고 꾸물꾸물…중입니다.
현재 스페인에 계신 걸로 알고 있는데, 그림 스타일을 형성하는데 영향을 받았다고 생각하시나요.
스페인에 온지 6년 정도 되었구요, 그전에는 지금과 같은 창작활동을 하진 않았었고 이렇게 바르셀로나에 머물며 작가로서의 삶을 살게 될 줄은 상상하지 못했습니다. 일도 조금 하다가 이르지 않은 나이에 바르셀로나 유학길에 올랐습니다. 돌이켜 생각해보면 ‘내가 하고 있는 일이 정말 나를 설레게 하는 일인가’ 라는 낭만적이었을 수도 있고 철이 덜 들었을 수도 있는 질문이 저를 이 먼곳에 오게끔 한 것 같습니다. 다른 곳을 두고 스페인으로 오게 된 것은 친한 친구가 있어서 초반에 많이 도와주기도 했구요, 날씨도 너무 좋고 바르셀로나라는 도시가 주는 에너지도 매력적이었기 때문입니다.
정말 해보고 싶은 프로젝트가 있다면요?
패션피플은 아니지만, 가방이나 구두에 관심을 버리지 못하는 여자인 나를 발견 할 때가 있습니다. 그러다 보니 언제고 인연이 닿는다면 패션브랜드와 콜라보레이션을 진행해보고 싶습니다.
마지막으로 도시 서울에 대해 어떤 인상을 가지고 있나요.
부산이 고향입니다. 하지만 대학 이후 줄곧 자취생활을 서울에서 했으니 서울을 생각해도 고향 같다고 느껴질 때가 있습니다. 그렇지만 변하지 않고 늘 그대로 나를 반겨줄 것만 같은 한결같은 고향이라기 보단, 어떤 새로운 것들을 만나게 될까 기대되면서도 한편으론 너무 멀어져 괴리감이 들지는 않을까 걱정도 되는 그런, 세상 어디보다도 바쁘고 새롭고 빠른 곳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