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빨간 것’으로 묶어 말할 수 있는 온갖 금기시 되는 것들에 대해 그의 실체보다 확대된 공포심과 거부감을 안고 살아가는 사람들-나는 그러한 사람들이 레드콤플렉스에 대해 보다 면역력을 기를 수 있는, 나아가서 극복할 수 있도록 하는, 안전한 멸균의 장을 마련코자 한다.
‘여자니까 -.’ ‘한국사회에서 살아가려면-.’ 누군가에게 한 번 정도는 들어봤을 법한 – 하지만 그에 관한 속깊은 대화만은 피해왔던 이야기들. 그런 한국 사회에 깊이 박혀있는 컴플렉스를 주제로 작가 이미정은 ‘명랑하게’ 작업한다. 스스로에게 상을 주는 ‘셀프 프라이즈’ 시리즈, 금기시되는 것에 관한, 억압받았던 기억을 주제로 작업한 ‘레드 컴플렉스’와 ‘핑크노이즈’. 작가는 그런 자신의 경험이 타인과 소통되기를 바라며 다양한 매개체를 통해 작품세계를 확장해 나간다. 가슴 한구석에 불편하게 남아있는, 어쩌면 여자이기에 더 바람직하지 못하다고 인식되는 ‘나의 비행’을 이제는 명쾌하게 받아들일 수 있도록.
<Stage for Self prize>, acrylic on wood, variable size(about 800x200cm), 2013
Self prize series, 2011 –
8 Characters for Job Hunting, pigment print
효제충신예의염치, 여덟 자를 표현한 윤리 문자도가 있다. 이는 권장되는 8가지의 덕목을 표현한 전통민화이다. 나는 이것을 차용하여 현재 20대들이 취업을 위해 갖춰야할 덕목들로 바꿔내 보았다. 취업이 되기 전까지 부모님께 의지해야 하는 염치, 동료라고는 하지만 경쟁자일 수밖에 없는 구도, 옳지 않아도 굴복하는 충성심 같은 것들로 표현되었다.
Landscape with dildo, digital drawing, 2011-2014
<Pink Noise> exhibition view, 2014
<The Slogan>, acrylic on wood, each 5x55x120cm, 2014 (part)
Flowing body, acrylic on canvas, each 33.4×24.2(cm), 2014
<사정의 벽>, acrylic on wood, 40x100x205cm, 2014
인터뷰
까이에 드 서울: 이미정씨의 작품세계를 정의한다면요? 도예와 회화를 전공하신 것으로 알고 있는데, 어떤 계기로 지금의 주제로 작가의 길을 걷게 되셨는지 궁금합니다.
이미정: 제 작업은 제가 한국에서 태어나 살아오면서 마주했던 관습적인 가치프레임으로부터 출발합니다. 이는 응당 사람이라면, 여자라면, ~해야한다는 문법같은 것인데요. 이러한 가치프레임을 유쾌한 방식으로 전복하고, 나아가 그 프레임으로부터 벗어나 주체적으로 살아가는 방법에 대해 모색하는 이야기들입니다. 드라마틱한 ‘계기’가 있었던 것은 아닙니다. 다만 돌이켜보면- 매번 작업을 시작할 때에, 제 개인적인 경험이나 상황에서 출발하는 편이었습니다. (재료가 되는 셈이죠) 그리고 그것들을 저에게만 의미있는 ‘일기장’이 아닌, 다른 사람들도 공감할 수 있는 형식과 내용으로 확장시켜 보여주고자 했습니다.
Red complex, Pink lens effet. 작업에서 ‘색‘이 가지는 의미가 크다는 생각이 듭니다.
‘색’이라는 것은 아주 직관적인 감각이기도 하고, 동시에 사회안에서 특정한 대상을 연상시키는 코드이기도 하다고 생각해요. (예를 들어 빨간색이라면 정지, 금지, 위험, 성인물 등등이 떠오르는 것처럼요.) 지금까지 했왔던 시리즈 작업에서 빨강이나 분홍같은 색깔을 주로 썼던 것은 그런 이유였습니다. 색은 작품의 첫인상이 될 수 있는 요소이기도 하기 때문에, 그 색을 보았을 때 보는 사람이 직관적으로 느낄 수 있을만한 감각이나 코드등을 동시에 전달하려고 했던 것 같아요.
작업에서 딜도가 귀여운 동물로 표현되기도하고, 어떻게 보면 어린아이 같은 요소가 많은데 그런 표현방식에 어떤 의도가 담겼나요?
언급해주신 작품은 <Landscape with dildo>라는 시리즈인데요, 그 작품을 처음 구상하던 시기에 제가 자주 했던 말이 “쉬쉬하는 이야기, 명랑하게 보여드리겠습니다.” 였어요. ‘성’이라는 것이 어떤 옷을 입느냐에 따라 금기시되고 하고 판매되기도 하는 세태가 아이러니하다고 생각하기도 했구요. 그래서 그림을 그릴 때에 약간 숨은그림 찾기처럼 표현하고자 했어요. 처음 봤을 땐 플랫한 색면이나, 동물의 표정, 풍경이 먼저 보이는데, 조금만 더 찬찬히 살펴보면 야릇한 장면으로 보이게요. 그러한 시각적인 반전을 통해 일어나는 유쾌한 감각들을 기대했습니다.
설치작업, 세라믹, 일러스트. 다양한 방식으로 작업을 하고 계신데, 작가로써 기억에 남는 아티스트의 작업이나 영향을 받은 작품이 있나요?
가장 여러 번 보고, 듣고, 곱씹은 작품은 John Cameron Mitchell 감독의 <Hedwig and The Angry Inch > 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 같아요. 영화의 몇몇 장면들도 좋지만, 영화보다는 OST 앨범을 좋아합니다. 아무래도 노랫말 때문이겠죠. 회화 작가로는 james benjamin franklin 도 좋아하는데, 특히 화면에 가끔씩 등장하는 조각적 이미지가 인상적입니다.
어떻게 보면 굉장히 대담하다고할 수 있는 작업을 접한 사람들의 반응은 어떤지 궁금합니다.
저는 금기시 되는 소재나 대상을 작업으로 표현할 때, 그것들을 팬시하게 혹은 유희적으로 표현하는 편인데요. 그래서인지 평소에는 그런 것들을 불편해하시는 분들도, 작품을 재미있게 찬찬히 살펴보시는 모습들이 인상적이였어요. 그런 모습을 볼 때, 내가 만들어낸 이미지나 물질이 유의미했다는 생각이 들곤 해요. 아무래도 제가 한국에서 태어났고 자랐기때문에 느껴온 것들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이다보니, 작품을 보는 분들하고 어떤 공감대같은 것이 존재하는 것 같은데요. 그래서 작품을 매개로 하여 대화가 이어지는 순간들이 즐겁습니다.
마지막으로 저희가 항상 드리는 질문입니다. 서울에 대해 어떤 인상을 가지고 계시나요? 그리고 애착이가는 동네가 있다면요?
저는 수도권 지역에 살고 있어서, 꽤 오랫동안 서울로 출퇴근을 하고 있어요. 왜냐하면 학교라던지, 일터라던지,작업실이라던지- 제가 주로 활동을 하는 곳들이 다 서울이였거든요. 그래서 서울은 제게 work place같은 느낌이에요. 서울에서 좋아하는 동네로는 이슬람 사원 근처의 우사단 마을(우사단로)입니다. 몇 해전만해도 재개발 예정의 스산한(?)동네였다고 하는데, 그 동네에 자리잡은 젊은 사람들이 삼삼오오 모여서 활기찬 동네로 만들었습니다. 동네 구석구석에, 동네에 대한 사람들의 애정과 에너지가 느껴져서 저까지 다 힘이 납니다.
<Pink Noise> exhibition view, 20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