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 서민정의 작업은 ‘소멸’과 ‘시간’의 개념으로부터 시작된다. 폴리스티렌, 도자기, 식물 같은 부서지기 쉬운 섬세한 소재로 만들어진 작업은 단순한 오브제가 아닌 하나의 현상으로 표현된다. 몸체는 사라진 채 형태만 남은 죽은 새, 관류액으로 간신히 생명을 유지하고 있는 시든 꽃. 우리는 그녀의 작업을 보면서 마음 깊숙히 내제하여 있던 소멸에 대한 두려움을 다시 상기시킨다. 시간이라는, 끊임없는 변화와 소멸의 연속 선상에 놓여 있는 삶을 작가는 설치물을 통해 순간을 잠시나마 영원처럼 붙들어 놓고 싶은 우리의 욕망을 반영하는 듯하다.
서민정 작가는 드로잉, 영상, 조각, 세라믹, 사진처럼 재료에 국한되지 않고 같은 주제를 연속적으로 표현해 나간다. 1972년 부산에서 태어나 서울 – 도쿄 – 독일을 왕래하며 활동하고 있으며 현재는 베를린에 작업실이 있다.
Sum in a Point of Time
Sum in a Point of Time III – 시리즈는 폴리스티렌 조각을 재구성한 작업으로, 건물이 무너지는 장면을 정지해 놓은 듯한 착각을 하게 된다. 작가는 실제로 존재하는 집의 형태를 본떠 조립한 후 실제로 부순 후에 다시 장면을 재구성 한다. 조용하고 밝은 공간에 설치된 작업은 정적이면서도 드라마틱하다. 작가는 집이 존재하는 상태도, 사라진 상태도 아닌 그 경계에 놓인 순간의 사물을 정지시킨 채 작업으로 재구성한다.
Tattoo
To Live On
To Live on은 말라 죽어가는 장미를 관류액으로 가득 찬 튜브에 넣어 생명을 유지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작가는 시간과 공간에 매달린 꽃들을 보며, 의학의 발전으로 생명은 더 오래 유지하면서도 정작 질적으로는 진정한 ‘살아 있는 삶’을 유지할 수 없는 슬픈 단면을 보여준다.
White blackbird
White blackbird 시리즈에서 작가는 죽은 새들을 도자기로 감싼 후 뜨거운 온도에 굽는다. 구워지는 과정에서 새는 화장되고 형태만은 하나의 물체가 되어 고스란히 남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