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자이너 박원민의 ‘희미한 연작’ 시리즈는 도시의 안개 낀 분위기를 디자인으로 표현하면서 시작된다. 특정한 형태가 아닌 어떤 장면이나 분위기를 표현하려 했다는 점에서 그의 작업은 페인팅을 닮았다.
최소한의 형태와 함께 눈에 들어오는 것은 재료 자체의 성질이다. 시각적으로는 분명히 존재하지만 물리적으로는 표현하기 어려운 빛과 색을 유형화한 작업으로, 여느 가구처럼 재료에 색을 입힌 것이 아니라 색 자체가 하나의 모놀리스를 형성한다. 투명성과 불투명성, 소재와 색 그리고 색과 색 사이에 존재하는 경계의 모호함이 우리의 시선을 더 오래 머무르게 한다.
건축을 공부하고 네덜란드 Design Academy Eindhoven에서 디자인을 전공한 박원민은, 2012년 Studio Wonmin Park을 연다. 현재는 파리와 로테르담을 왕래하며 작업하고 있다.
인터뷰
어떤 주제로 작업하고 계신가요?
제 작업은 대부분 머릿속에 가지고 있던 이미지로부터 시작됩니다. 제 자신이 어떤 것을 아름답다고 생각하는지에 대한 고민을 많이 하는데 그러다 보면 무엇을 만들고 싶은지도 자연스럽게 떠오릅니다. 그리고 그 이미지를 실현하기 위해 알맞는 소재를 찾기 시작하는데, 예를 들어 수지를 사용한 Haze 시리즈 같은 경우 당시 뿌연 이미지의 소재를 찾고 있었습니다. 수지라는 재료의 특징이 미적인 면에서 제가 찾던 이미지와 맞았던 거죠. 사실 수지 자체가 새로운 재료는 아닙니다. 보통 대량 생산을 할 때 많이 쓰이는데 저는 제 작업에 맞는 새로운 표현 방법을 찾은 거죠.
색과 관련된 작업이 많은데 특별히 애착이 가는 소재나 색이 있나요?
특정한 재료에 국한되거나 어떤 색에 애착을 갖지는 않습니다. 기본적으로 다양한 색을 사용하는데, Haze 시리즈의 경우 형태는 단순하고 비대칭적이지만 색으로 전체적인 균형감을 찾은 작업입니다. 이번에는 초를 가지고 새로운 작업을 하고 있는데 불에 색을 넣었습니다. 재료는 바뀌지만 그런 부분에서 제 작업이라는 것이 자연스럽게 드러난다고 생각합니다.
디자인할 때 어떤 점을 중요하게 생각하세요?
미적인 부분과 실용성, 저의 아이덴티티, 실험성, 시대성 등을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미적인 부분과 실용성이 균형을 잘 이루어진 것이 좋은 디자인이라고 생각합니다. 사람들이 더 아름다운 가구를 사기 위해 사용하던 가구를 버리는 걸 보면, 세월이 지나도 계속 가지고 있게 되는 디자인이 좋은 디자인이라고 생각합니다.
프로젝트마다 어느정도 계획을 가지고 있지만 우연에 의한 것을 좋아합니다. 머리로 하는 건 별로 믿지 않습니다. 머릿속으로 계산해서 만드는 데에는 한계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사실 발명품도 실수나 우연에 의해서 발견되는 경우가 많잖아요. 디자인을 할 때 ‘재료는 이걸 사용해야겠다’라는 식으로 미리 정해놓고 디자인을 하면 그 재료를 충분히 살릴 수가 없다고 생각합니다. 어떤 소재를 연구하다 보면 거기에 굴절도 있을 수 있고 우연히 발견되는 그 재료만의 특징도 있을 수 있거든요. 그냥 책상에 앉아서 디자인을 하면 그런 부분이 부족하다고 생각합니다. 재료를 어떤 상황에서 어떤 방식으로 어떻게 사용하는지가 중요한 것 같습니다. 그게 디자인이라고 생각합니다.
지금까지 가구가 놓인 장소 중에 가장 기억에 남는 곳이 있나요?
Rossana Orlandi라는 유명한 큐레이터분과 밀라노에 있는 Museo Bagatti Valsecchi에 가구를 전시한 적이 있습니다. 19세기에 지어진 웅장한 분위기의 건물로 흔하게 볼 수 있는 장소는 아닙니다. 그런 힘 있는 공간에 제 작업이 놓였는데도 그 위압감에도 묻히지 않았습니다. 굉장히 고전적인 공간임에도 현대적인 제 작업이 잘 드러나면서 동시에 그 장소와 자연스럽게 어울렸던 전시라 저한테는 특별한 기억으로 남아있습니다.
마지막으로 서울에 대한 생각, 좋아하는 동네가 있나요?
조금 오글거리기는 해도 청담동이 트렌드를 볼 수 있는 곳이라고 생각합니다. 지금의 유행이 보이기도 하고 문화적으로 앞선 곳 중에 하나라고 생각합니다. 유럽이나 미국의 문화가 흡수돼서 조금은 어설플 수도 있지만, 빠른 변화가 보이기 때문에 재밌다고 생각합니다.
서울이라는 도시는 기본이 없었는데 점점 그 기본이라는 것이 갖춰져 가고 있는 도시라고 생각합니다. 우리 나라의 재밌는 문화적 요소 중에 하나가 타문화를 흡수해서 자신의 문화로 만드는 부분이라고 생각합니다. 하이 클래스 보다는 미들 클래스가 많지만, 그런 특징이 서울이라는 도시의 일부를 구성한다고 생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