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 최랄라의 사진 속 원색의 색채로 담긴 인물의 제스처는 강렬하고 회화적인 아름다움을 자아낸다. 타인의 감정을 우연히 몰래 들여다보듯, 작가가 만들어낸 장면들은 우리의 마음속에 긴 여운을 남긴다. 20대 초반 군 복무 시절 사고 기록 사진을 찍으며 시작된 그의 사진에 대한 관심은, ‘뒷모습’ 시리즈로 이어지며 내면을 섬세하게 담아내는 작업으로 발전한다. 독학으로 사진을 계속 한 최랄라는 2009년 상업 사진을 시작으로 2016년부터는 개인 프로젝트에 집중하게 된다.
18세기와 19세기 그림과 클래식 음악에서 영감을 받은 최랄라의 작업은 그만의 독특한 뉘앙스를 섬세하게 포착할 수 있는 필름 카메라로 촬영된다. 제한된 색상과 최소한의 제스쳐를 통해 재현된 장면들은 인물 간의 관계에서 오는 찬라의 감정들을 담아낸다. 연극의 클라이맥스를 떠올리게 하는 그의 작업은 사진과 그림의 경계에 놓여 관객들에게 깊은 감정의 공감을 불러일으킨다.
어떻게 처음 사진을 시작하게 됐나요?
20대 초반에 군대에서 사진을 시작했습니다. 당시 해안경비대로 근무하면서 사고를 보고하기 위해 사진을 찍었고, 이후 독학으로 사진을 공부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다 2009년부터 상업 사진을 찍기 시작했는데, 저와 잘 맞지 않는다는 것을 느끼고 2016년부터 제가 표현하고 싶은 개인 작업을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사진 프로젝트에 대한 영감은 어디에서 얻으시나요? 작업에서 반복되는 테마나 주제가 있나요?
처음에는 제가 했던 경험을 사진으로 담다가 점차 색채와 인물로 감정을 표현하게 되었습니다.
현재는 사람 간의 관계를 표현하는 작업을 하고 있습니다.
사진을 통해 전달하고 싶은 메시지가 있나요?
제 사진이 외로움과 따뜻함 같은 모순된 감정을 담아내기를 원합니다.
타인과의 관계에서 느끼는 감정을 토대로 작업을 하다 보니 사진을 봄으로써 자신이 겪었던 일을 상기해 보기도 합니다.
작업을 할 때 어떤 부분을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나요?
작업할 때 내가 표현하려는 생각이 정말 맞는지를 가장 중요하게 생각합니다. 중요하게 생각한다는 걸 느낄 때는 드로잉 해 둔 시안을 바로 촬영한다거나, 결과물을 바로 공개하지 않고 며칠, 몇 달, 길게는 1년까지도 묵혀두고 계속 보는데, 그로 인해 공개되는 사진에서 전달하고자 하는 것이 좀 더 제 의도적으로 명확해질 수 있는 것 같습니다.
My mirror와 People’s back 작업의 경우 둘 다 뒷모습을 담은 작업임에도
전달하는 감정이 다르다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두 작업에 대해서 소개해 주신다면요.
거울은 존 사코우스키 (John Szarkowski)가 뉴욕 MOMA 퇴임사 중 말했던 “사진가는 두 가지다. 창밖을 보는 사람과 거울을 보는 사람”에서 차용한 것입니다. 제 스스로가 아무래도 실제 벌어지는 일들(창밖)보단 내면을 들여다보는 것(거울)이 좋았기 때문에 ‘나의 거울’이라는 카테고리가 생겨났습니다.
‘People’s back’은 본래 ‘Sitting woman turned back’이라는 제목으로 시작된 작업으로 타인의 뒷모습을 기록하는 작업이었습니다. 이후 뒷모습을 찍는 스타일이 여러 가지로 생겨나면서 한데 묶을 주제가 필요했습니다. 서 있거나 측면인 모습도 있어서 더 이상 뒤돌아 앉은 여자라는 제목을 사용할 수가 없었거든요. 두 가지 다 뒷모습이긴 하지만 다르게 느껴지는 건, 포커스를 타인에게 두느냐 나에게 두느냐의 차이에서 오는 것 같습니다.
필름 카메라를 선호하는 이유가 있나요?
처음에는 디지털카메라로 작업을 시작했는데, 결과물을 바로 확인할 수 있는 디지털카메라보다 인화전까지 결과를 확인할 수 없어 작업 초안에 집중해야 하는 필름 카메라를 선호하게 됐고 본격적으로 활용하게 되었습니다. 무엇보다 작업에 대한 생각을 지킬 수 있는 것이 가장 큰 장점인 것 같습니다.
두 번째로 색감과 암부계조에서 디지털이 표현하지 못하는 것을 필름은 구현해 내기 때문에 즐겨 사용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제는 카메라의 기술 발전이 색상 프리셋, 고감도시에 발생하는 노이즈 억제, 암부계조 등에 대한 기술이 월등히 좋아져 이에 적응하기 위해 조금씩 연습해보고 있습니다.
번지는 듯한 강렬한 색감이 페인팅 작업을 연상시킵니다. 아이디어에서 최종 사진까지의 과정은 어떻게 되나요? 후반 사진 작업을 통해 이러한 효과를 얻으시는지, 아니면 수동 카메라 설정과 촬영 과정을 통해 얻으시는지 궁금합니다.
저의 작업은 먼저 생각하는 것에서 시작되어 그림으로 구체화됩니다. 그림에서 많은 영감을 받는데, 매우 한정된 최소한의 형태에서 아름다움을 느낍니다. 인물의 포즈와 의상을 단순화하고, 몇 가지 색상만을 사용합니다. 자연광을 좋아해서 빛의 사용과 필름의 질감이 제가 촬영하는 사진들을 그림처럼 보이게 만드는 것 같습니다.
자연광, 정적인 초상 포즈와 필름의 질감, 제한된 색상 사용을 통해 ‘사진’을 찍습니다. 그런 다음, 리터칭 중에 듣는 음악과 당시의 기분이 본능적으로 전체 사진의 톤과 색상을 결정합니다. 감정적 요소를 시각화하는 이 과정은 ‘그림’의 과정과 개념적으로 유사하다고 생각합니다. 실제로 존재하는 것을 기록하는 것보다 감정을 표현하는 작업이기 때문입니다. 그림 같은 사진이 특정 의도는 아니지만, 그런 결과에 만족합니다.
사진 스타일을 성립하는 데 영감을 받은 예술 사조나 작가가 있다면요?
18세기와 19세기의 화가들인 외젠 들라크루아, 구스타프 모로, 뒤샹에서 많은 영감을 받습니다. 미국 작가 중에는 에드워드 호퍼와 조지아 오키프를 좋아하고, 한국 작가 중에는 김환기와 천경자 작가를 좋아합니다. 음악도 좋아하는데, 클래식 음악인 바흐와 말러, 그리고 ECM도 좋아합니다. 요즘에는 짧은 인용구나 말에서 영감을 얻습니다.
사진작가 중에는 파올로 로베르시(Paolo Roversi)와 사라 문(Sarah Moon)에게서 영감을 받습니다.
사진을 촬영하면서 가장 기억에 남는 프로젝트나 에피소드가 있다면 말해 주세요.
기억에 남는 작업은 뒤돌아 앉은 여자들을 작업하려고 ‘너무 말하고 싶은데 말하고 싶지 않은 사람들’을 모았던 일인데, 그들이 스튜디오에 와서 본인들의 이야기를 하던 16년도가 생각납니다. 여러 사람들의 다양한 경험담과 그 당시 제 마음, 3명이 공유하는 스튜디오에서 생활하며 누드 작업을 하면서 극도로 외부의 기척에 예민했던 것 등의 모든 상황이 여전히 생생합니다.
마지막으로 도시 서울에 대해 정의를 해본다면요? 좋아하는 장소나 공간이 있다면 함께 소개해 주세요.
서울은 정말 편리하고 살기 좋은 곳입니다. 좋아하는 장소는 한강입니다. 안 좋아할 이유가 없거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