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어떤 계기로 지금의 작업이 시작되었는지 궁금합니다. 어떤 주제로 작업하고 계신가요.
대학에서 패션과 텍스타일 디자인을 전공했어요. 졸업 후 런던에서 패션, 인테리어 디자이너로 일하면서 세계 디자이너들과 함께 일 할 수 있는 소중한 경험을 했어요. 하지만 언젠가부터 나에게 만약 미술적 재능이 있다면, 그 재능을 보다 의미 있고 유행에 구해 받지 않는 지속 가능한 작업을 하는 데 쓰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됐어요. 특히 소재와 디자인에 의한 지속가능이 아닌 인간의 감정에 의존한 지속가능성에 더 흥미를 갖게 되었던 것 같아요. 그 이후 무엇보다도 나 자신과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중요한 작업을 시작하게 된 거 같아요.
작업에 사용되는 오브제들에 ‘가구’가 많이 등장한다는 생각이 듭니다.
인테리어 디자이너로 일 할 때 자연스럽게 가구에 흥미를 갖게 되었어요. 모든 사물과 가구들이 사람과 같이 보일 때도 있었어요. 저마다 개성이 강하고, 쓰임새도 다르죠. 특히 오래 사용되었거나, 버려진 가구에서 정을 느끼고 무언가를 베풀어 주고 싶다는 생각에 시작한 것 같아요. 가구를 선택할 때 특별한 이유는 없어요. 제 눈에 예쁘고 왠지 산전수전 다 겪은 것 같아 정이 가는, 사람과 사랑에 빠질 때와 같은 추상적인 감정에 의해 선택하는 것 같아요.
모든 작업에서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는 ‘직물’을 짜는 방식은 여러 도시에 머무르면서 직접 배우셨다고 들었습니다.
처음에 직물이란 기법을 선택한 이유는 그저 수많은 실들이 무거운 의자를 잘 잡아줄 것 같아서였어요. 그러나 작업의 아이디어나 의미가 진화하면서, 직물의 역활이 단지 기술적인면에서 그치지 않고, 그 자체에서 더 많은 내용이 나오면 어떨까 하는 욕심이 생기기 시작했던 것 같아요. 그 이후 자연스럽게 직물에 대한 흥미를 가지고 배우기 시작했어요. 그때는 이미 학교의 모든 교육과정이 끝난 후였기 때문에, 섬유디자인의 역사와 정통이 깊은 나라들을 무작정 찾아보고 가보기로 했죠. 한국문화에술위원회의 지원을 받아 인도, 아이스랜드, 멕시코 등에 머물며 실의 다른 사용법과 전통적인 직물 짜기 방식 등에 대해 배웠어요. 물론 나라마다 그 나라 문화와 날씨를 반영하는 다양한 기법들이 있긴 하지만, 전체적인 직물 짜기의 틀과 아이디어는 거의 흡사해요. 수천 년 전 서로 멀리 떨어져 왕래가 거의 불가능했던 나라들이 모두 비슷한 기법과 패턴으로 직물을 짰던 것인데 이점이 매우 흥미로웠어요.
사용되고 소모된 가구를 가지고 작업하여 여러 시간이 축적되어 있다는 점과 여러 문화의 직물 기술이 작업이 동화되어 있다는 점이 인상적입니다.
제 작업에서 시간은 전부라고 할 수 있어요. 보이지 않은 추상적인 시간을 직물로 시각화하기 때문이에요. 한국과 영국을 거쳐 다양한 문화와 전통 섬유기술들을 보고 배우고 싶어 여러 나라를 여행했어요. 하지만 그것이 지금 하고 있는 작업을 위한 것은 아니었어요. 결국엔 그 시간과 다양한 문화 경험은 제가 앞으로 창작하고자 하는 것을 조금이나마 현실화하는데 큰 밑거름이 되었지만요.
직물이 단지 기술에 그치지 않고 그 자체에서 더 많은 내용이 나오면 어떨까 하는 생각을 하셨다고 했는데 그 부분에 대해서 좀 더 얘기해 주실 수 있나요?
예전에 했던 직물과 의자를 결합하는 작업 이후 직물이 조형적인 사물의 결합 없이도 자체적으로 조형화 되는 작업을 하고 싶었어요. 전통직물을 짜는 과정에는 창의적인 아이디어를 결합하기에 실과 틀의 특성상 제한적인 요소들이 많아요. 때문에 대부분은 색상과 패턴으로 다양성을 주는데, 저는 그 한계를 넘기 위해 노력하고 싶은 거죠. 예를 들어, 볼륨, 곡선의 이용, 직물을 짜기엔 부적절한 재료선택 등이요. 작업을 시작하기 전에 특별한 계획이 없어요. 가능성에 대한 생각 없이 스케치부터 하고, 스케치해놓은걸 만들고 싶다면, 그때부턴 되든 안되든 시작하는 거예요. 때문에 만드는 과정에서 많은 실수를 거듭하고 시간도 낭비하지만, 결과적으로 그 과정이 없었다면 지금 하는 작업을 할 수 없었을 거예요.
‘The Waves in the Breeze’ 작업은 동양적인 회화의 느낌이 많이 나는데,
배경이 되는 직물은 흙의 느낌이 나기도 합니다. 이 작업에 대해서 설명해 주실 수 있나요?
이 작업은 2015년 5월 영국공예청에서 선정하여 콜렉트 전시회를 통해 선보인 작업이에요. 3개월 동안 인도 케랄라에 머물며 인도 현지인과 가족처럼 작업하여 애착이 많이 남았어요. 2014년 처음 이 스케치를 공예청에 지원할 당시 소설가 헤르만 헤세에 푹 빠져있었어요. 헤르만 헤세의 소설을 통해 본 세상에서, 인간의 고향은 결국 우리가 태어나고 돌아가는 흙이라고 생각했던 것 같아요. 이 작업의 가제는 ‘Coming, Going’ 이였어요. 우리가 가는 것인지 오는 것인지에 대한 고민을 했던 것 같아요. 물론 소프트한 섬유와 조형적인 나무들을 이용하여 직물이란 정통적인 기법을 통해 현대적인 방법으로 시각화하려는 기술적인 고민도 많았던 작업이에요.
반면에 ‘Hampi’ 작업은 조각에 가깝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형태라던가 하나의 오브제를 구성하는 직물의 변화가 아름답습니다.
‘The Waves in the Breeze’ 를 완성하고 바로 들어간 함피 작업은, 그 전 작업에서 고민했던 기술적, 감성적인 표현방법에서 또다시 진화된 나만의 새로운 표현방식을 찾고 싶었던 것 같아요. 벽이라는 공간에 보다 익숙한 타피스트리를 벽이 아닌 다른 공간으로 이동시켰고, 와이어로 볼륨을 주어 평면에서 보다 확장된 형태로, 조형물로써 재해석하고자 했어요. 재료는 실크와 와이어로 최소화하여 단 두 개의 재료가 만났을 때 어떻게 나의 감정을 극적으로 표현할 수 있을까라는 생각을 많이 했던 것 같아요.
작업을 발전시키면서 영향을 받은 이론이나 소재가 있는지 궁금합니다.
크게는 소프트한 조형물로 자극적이며 파워풀한 메세지를 전달하는 Eva Hesse 와 Magdalena Abakanowicz 가 제 우상이에요. 섬세함과 강인함이 동시에 공존하는 작품들로부터 영향을 받고 있는 것 같아요. 소설가로는 헤르만 헤세의 팬입니다. 헤르만 헤세의 세상과 인생에 대한 고민과 철학적인 아름다운 이론에 깊이 감명 받았어요. 그중에서도 데미안과 싯다르타에서 많은 울림을 받았던 것 같아요.
마지막으로 저희가 항상 드리는 질문입니다.
도시 서울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서울에서 좋아하는 공간이나 장소가 있다면 소개해 주세요.
저는 여러 도시를 여행하며 그 도시의 공항이란 공간을 좋아하게 됐어요. 공항은 공간과 환경의 변화에 직면하기 바로 전후의 지점이고, 그 어디에도 소속되지 않은 것만 같은 미지의 공간이에요. 저에게 서울 도시 안에서 이러한 비슷한 의미의 공간이 있는데 서울의 지하철이에요. 변화가 빠른 서울에서 지하철은 그 변화와는 특별히 상관없이 늘 같은 역을 지나며 제 몫을 해내요. 그 중에서도 자동차가 함께 달리는 동호대교를 건너는 지하철 3호선을 좋아해요. 동호대교는 철물다리 사이로 다니나믹한 서울을 다이나믹하게 볼 수 있어서 좋아요. 대교를 건너는 그 짧은 시간이 그 순간을 더욱 특별하게 만들어주는 것 같아요. 그 순간이 좋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