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러스트 작가 예지씨가 연필 끝으로 그려내는 세상은 반짝반짝 빛난다. 책상 위에 놓여진 다채로운 색연필만큼이나 자유로운 감성으로 현실 속 풍경을 그려내는 이야기들은 어릴 때 가슴 두근거리며 읽던 동화를 떠올린다. 우리는 그녀가 만든 리듬에 맞춰 사랑의 왈츠를 추기도하고 쓸쓸함에 몸부림치기도 하면서 삶은 또 다시 숨가쁘게 돌아간다.
Modern Solitude -제공된아이템 리스트 중 예지씨 마음에 드는 5가지를 뽑아 5장의 포스터로 만든 ALAND 아트북 프로젝트.
인터뷰
윤예지씨의 작품 세계를 정의한다면요?
제 작업들은 규정되어 있는 경계를 흐리면서 그 사이로 재미나게 줄타기를 하는 놀음입니다. 비극과 희극 사이 , 성인의 색기와 아이의 순진함 사이, 인간과 동물의 모습 사이, 국적 사이.. 이 둘 사이에서 아슬아슬 줄타기를 하며 진부하지 않은 형태와 이야기, 색들을 만들어 내려고 합니다. 제 작업은 시간을 살아오면서 느끼고 보고 경험하는 것들을 제 마음과 뇌의 필터를 통해 변형하여 다시 세상에 내어놓은 배설물이기도 해요. 동시에 다른 사람들과 소통하고자 하는 의지이기도 합니다. 그리고 그 안에 유머를, 혹은 짜낼 수 있는 한 영혼의 울림을 깃들여 내어 일회용이 아닌 생명력 있는 작업을 만들어내려 노력합니다.
photo by Jei Tootle
영향을 받은 아티스트의 작업이 있나요?
언제나 동시대의 많은 작가들에게 조금씩 조금씩 많은 영향을 받습니다. 딱 한명을 꼽을 수도 없고, 시기 별로 계속 바뀌며 점점 많아 지기 때문에 다 나열할 수도 없네요. 그 동안 화집을 사모았던 생각나는 큰 작가들의 이름들을 꼽아보자면 Kiki Smiths, Jockum Nordstrom, Marcel Dzama, Tove Jansson이 창조해 낸 Moomin troll들의 세계, David Hockney, 그리고 많은 outsider artists들.. 그리고 많은 음악가들, 밴드들.
작업 과정에 대해 – 이야기가 담긴 그림들이 많은 것 같아요. 그런 스토리, 소재나 영감은 어디서 얻으시나요?
저도 솔직히 말하면 제가 그리는 그림의 상상력의 기원이 어디인지는 정확히 모르겠습니다. 삶에서 조그마한 것들을 지나치지 않고 잘 관찰하는 편인데, 그런데서 오는 것일까요? 아니면 감정의 결 하나하나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편인데 그런데서 오는 것인지도 모르겠네요. 경험주의자라 새로운 장소, 사람, 음식, 안해본 일들 이런거 하나 하나씩 접해보는 걸 좋아하는데 그런 경험의 축적에서 나오는 것 같다는 생각도 들어요. 저는 여기 저기로 여행도 자주 가고 음악도 많이 듣고 영화나 책도 많이 봅니다.
책과 여행 영화보는 걸 좋아한다고 하셨는데 특별히 기억에 남는 작품이 있나요?
처음 만났던건 10년도 더 전 일이지만 The Million Dollar Hotel(Wim Wenders감독), 이 영화를 그 시절 정말 좋아했고 아직도 기억에 가장 많이 남는 영화 중 베스트에요. 장면 하나하나들, 담겨진 감성들, 톰톰과 엘루이즈라는 캐릭터, 배경음악, 스토리, 그 안에 살짝 숨어있는 유머들, 그리고 끝의 여운.. 모든 요소들이 저를 떨리게 했어요.
제일 처음 부탁받은 그림 작업과 제일 최근에 한 그림 작업은?
일러스트레이터로써 제일 처음 받은 그림작업은.. 대학교 1학년이 끝나가던 무렵, 어느 디자인 회사에서 볼로냐 어린이 그림책 페어에 선보일 새로운 야광 그림책 프로젝트에 그릴 그림을 저에게 부탁했었어요. 방학 때 알바를 한번 해보려고 일러스트 알바 공지가 있던 회사에 얼마되지 않은 그림을 모아 포트폴리오를 보냈었는데 제 그림 스타일을 보고 회사에서 놀랍게도 그 프로젝트 제의한거죠. 그 일로 인해 태어나서 처음으로 비행기도 타보고 처음으로 외국이라는 곳을 가보기도 했어요.
최근에는 일이 꽤나 많아서, 각기 다른 장르의 여러가지 일들을 한번에 병행하고 있는데.. 그 중 하나를 살짝 얘기하자면 처음으로 3-4세용 어린이 그림책 작업을 하고 있습니다. 사실 진행이 조금 느려서 아마 이번 여름이나 가을 너머로 나오지 않을까 싶어요.
런던에서 작업할 때와 서울에서 작업할때 – 그 도시의 사람들이나 분위기가 작업에도 다르게 영향을 미치기도 하나요?
돌이켜보면 분위기에서 분명히 자극을 받는게 있는 것 같아요. 런던에서는 제가 좋아하는 스타일로 작업을 잘하는 사람들이 너무 많아서 이리 저리 좋은 쪽으로 영향받기도 하고 정말 열심히 해야겠다 채찍질을 하게 되는데, 한국에서는 ‘음 이건 아닌데..’ 하는 작업들이 꽤 보여서 영향을 받지 않으려고 노력합니다. 런던은 정말 예술분야에서는 영감이 넘쳐나는 도시인 것 같아요. 걷기만 해도 영감 주는 것들이 그렇게 많았는데, 서울은.. 걷기만 하면 똑같은 아이돌 노래에 똑같은 얼굴들에 똑같은 샵들이 천지에 널려있지요.
그래도 분명 서울의 숨겨진 매력이 있어요. 그리고 아무래도 제가 자라온 곳이기 더 속속들이 잘 알고 있고 상대적으로 이용할 수 있는 것들이 많아요. 그래서 실제적으로 작업하기에는 런던보다는 서울이 더 편안합니다.
서울 – 이라는 도시는 어떤 인상을 남기나요?
서울은 으리으리한 새것과 대중을 지향하느라 빈티지와 다양한 소수 문화의 아름다움이 아쉽게도 빛을 쉽게 발하지 못하는 곳. 하지만 잠재력이 분명 무궁무진 한 곳. 아끼는 장소는 홍대의 언저리 지역들, 한남동과 녹사평 동네 언저리, 그리고 한강의 자전거 도로.
©까이에 드 서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