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 김영미의 작업을 보고 있으면 풍향에 맞춰 모습을 바꿔가는 하나의 정경(風景)을 보는 듯한 기분이다. 높이와 색이 다른 일련의 작업은 계절마다 모습이 바뀌는 풍경을 떠올린다. 스웨덴 남부의 집과 숲이 만들어내던 편안함, 기차에서 봤던 바다의 수평선처럼 여행을 통해 기억된 장면들이 그녀의 눈과 손으로 재차 여과되어, 성형, 건조, 초벌, 재벌이라는 오랜 과정을 거쳐 세라믹 작업으로 만들어진다. 나무의 몸통을 닮은 세세한 결들과 문문히 이어진 색을 담은 그녀의 작업을 바라보고 있으면 편안한 기분이 든다.
인터뷰
어떤 작업을 하고 계신가요?
이 작업들은 2년의 유학생활 동안 지속적으로 진행하여 마무리 된 프로젝트로 스웨덴이라는 낯선 나라에서 무언가를 만들고 있는 내 두 손에만 집중하여 나온 결과물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곳에서만 할 수 있는 것을 하고 싶었고, 자연스럽게 그곳에서 느낀 소리나 계절, 향기와 같은 무형의 감정들을 흙을 통해 저만의 방식으로 유형화/시각화하게 되었습니다.
처음 세라믹을 작업을 하고 싶다고 생각하게 된 계기가 있나요?
대학에서 세라믹을 전공하였습니다. 아주 솔직하게 말씀드리자면 처음에는 성적에 맞추어서 전공을 선택한 이유도 있었습니다만, 곧 흙이 가지는 깊은 매력을 알게 되었고, 그래픽 디자이너로서 일을 하고 있었음에도 직장을 그만두고 스웨덴 유학이라는 결정을 내릴 만큼 세라믹을 특별하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마우스가 아닌 두 손으로 흙이라는 물성을 다루는 작업은 말로는 표현할 수 없는 만족감과 즐거움을 주는 일입니다.
도자를 하는 사람들은 좌절을 많이 경험합니다. 성형, 건조, 초벌, 재벌 혹은 삼벌에 이르기까지 오랜 과정을 거치는 특징 때문에 이 긴 과정 안에서 실패를 경험하고 좌절하고 다시 일어서길 반복하는 조금은 고된 작업입니다. 하지만 그 때문에 과정의 끝에 얻게 되는 성취감은 그 어떤 것보다도 값진 것이 되곤 합니다. 아마도 저를 포함해 도자를 하는 많은 사람들은 이러한 프로세스에 중독되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곤 합니다. 세라믹 작업을 통해 대중과 소통하며 저만의 메시지를 전달하고, 그것들이 대중에게는 어떻게 전달될지 지켜보는 일도 작가로서는 굉장히 흥미로운 일입니다.
작업하시는 세라믹의 형태는 어떻게 정해지게 됐는지 알고 싶습니다.
입구가 열려 있는 모습이 꼭 액체를 담는 형태인 것 같기도 하고요. 형태에서 영감은 받은 오브제가 있을까요?
이번 프로젝트의 shape은 스웨덴 남서부의 작은 섬에 들러 보게 되었던 마을의 이미지가 그 시작점이었습니다. 모두 비슷한 듯 다른 형태를 띠고 있는 집들을 작은 동산에서 내려 보고 있자니 무한할 것 같은 편안함이 느껴졌습니다. 그 느낌을 그대로 작업에 가져오고 싶었습니다. 작업의 shape을 결정하는데 있어서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은 통일감, 다양함 그리고 단순함입니다. 이러한 의미들을 공존시키는 일은 자연스럽게 캐스팅이 아닌 물레 성형을 선택하게 하였고, 의도한 대로 기본적인 모양은 같지만 어느 하나 같은 것이 없는, 모두 다른 작업들이 나오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결과적으로 저의 모든 작업 하나하나가 산책길에 만나는 나무들처럼, 그때 그 작은 섬의 마을처럼 평온하게 어우러져 하나의 모습으로 보여지기를 기대하였습니다. 저는 저의 작업이 무엇으로 사용되든 개의치 않습니다. 물을 채워 꽃을 꽂으면 vase 가 될 것이고, 연필들을 꽂아 책상에 두면 필통이 되겠지요. 그 용도는 결국 사용자의 몫이라고 생각하고 작업하는 과정에서는 처음부터 무엇으로 사용되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은 하지 않습니다.
색과 질감에 대해서도 알고 싶습니다. Through landscape이라는 글을 적어 놓으셨는데, 서로 다른 색들이 풍경을 만들었을 때 정말 아름답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미세하지만 질감은 나뭇결을 닮았다는 생각을 했어요.
서로 다른 색들은 각기 다른 영감에서부터 출발하였습니다. 한겨울 자작나무 숲에서 느꼈던 황홀한 경험이 녹아 있기도 하고, 일몰의 고요한 수평선의 모습을 하고 있는 녀석도 있습니다. 이른 아침에 오슬로로 가던 기차에서 보았던 새벽녘의 지평선을 표현하기 위해 아이러니하게 산화염색이라는 toxic 한 방법을 택하기도 하였습니다. 각기 다른 소지(흙)를 사용하여 비슷한 shape이지만 그 모양과 크기를 다르게 하고, 유약이나 산화염색기법을 쓰면서 결과물을 그 때 제가 느낀 감정들에 최대한 가깝게 표현하고 싶었습니다. 그리고 그것들이 모두 모이게 되면 위에서 언급했던 섬마을처럼 산재되어 있지만 어색하지 않은 하나의 덩어리로 보여지기를 기대하였습니다.
어떤 형태에서 ‘아름다움’을 느끼시나요?
저는 공예와 디자인 모두 불필요한 것들을 잘 버릴수록 완성도가 높아진다고 생각합니다. 따라서 제 작업 또한 최대한 단순한 형태를 가지기를 바라며, 보는 이들도 그 형태에 대해 자연스럽게 받아들일 수 있기를 바랍니다. 저는 주로 인공물보다는 자연물에서 마음이 움직이는 편입니다. 아름답다고 느끼는 것들도 주로 정확한 어떤 형태일 때 보다는 다양한 자연물들의 어우러짐이 만들어내는 현상에서 아름다움을 느낍니다.
계획 중이거나 기회가 된다면 해보고 싶은 작업이 있나요?
저는 성실한 Ceramist 와는 거리가 멀고, 무언가를 계획하고 작업을 하는 타입도 아닙니다. 자연스럽게 이러한 타입이 되었는데 아마도 무언가를 하려고 계획하고 집착하다 보면 결국 그 계획에 끌려가고 있는 저를 많이 겪어왔기 때문인 것 같습니다. 특히나 세라믹작업을 할 때는 전적으로 저의 손을 믿는 편입니다. 논문에서도 다뤘던 ‘손기술’ 이라는 개념을 저는 전적으로 믿고 의지합니다. 어떠한 자극이나 영감이 흡수되었다면 그저 손을 부지런히 움직여 그 자극을 흙을 통해 사물화시키는 것이지요. 스케치를 하고 그것을 그대로 성형하는 것보다 성형 자체의 과정을 더욱 길게 가지며 완성도를 높여가는 것을 선호합니다. 아쉽게도 현재 계획하고 있는 작업은 아직 없다고 말씀드릴 수 있습니다. 지난 프로젝트의 경우처럼 저의 신상에 어떠한 변화나 자극이 온다면, 내일이라도 저는 마우스를 내려놓고 흙을 만지러 갈 것입니다. 6년 전 아이슬란드 여행에서 마음이 편하지 않은 상태여서 긴 여행이었음에도 양껏 즐기지 못했던 아쉬움이 있습니다. 정말 멋진 곳이었는데… 기회가 된다면 아이슬란드에 다시 가서 편한 시간을 가지며 작업을 해보고 싶습니다. 그곳에서 어떤 작업물들이 나올지 저도 몹시 기대되거든요.
마지막으로 도시 서울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세요? 좋아하는 장소가 있다면요.
서울은 제가 나고 자란 곳입니다. 물론 지금도 서울에 살고 있고요. 누군가에게는 붐비고 삭막한 대한민국의 수도일 뿐이겠지만, (그리고 저 또한 너무 붐비고 바쁜 도시라고 생각하지만) 그런 서울이 저에게는 고향이며 어디를 가더라도 돌아가야 할 따뜻한 회귀점이기도 합니다. 35년 동안 직접 보고 느낀 서울의 변화는 빠르고 대단했습니다. 앞으로의 서울이 몹시 기대되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서울에는 대도시답게 많은 좋은 장소들이 있지만 저는 부암동에 있는 환기미술관을 좋아하는 장소로 추천드리고 싶습니다. 제가 좋아하는 작가의 그림도 볼 수 있고, 카페테리아에 앉아서 내다보이는 밖의 모습도 너무 훌륭합니다. 조용한 부암동 뒷골목을 산책하다가 우연히 만난 보석 같은 미술관은 서울 속에서 무언가 조용하고 나른한 시간을 가질 수 있는 몇 안 되는 곳이기도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