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게 이어진 작은 파편들은 이제 둔탁한 물줄기가 되어 우리에게 힘있게 다가온다. 거대한 움직임을 상기시키는 작가 최연우의 작품은 보는 이에게 힘, 어지러움, 속도와 같은 익숙한 ‘감각’을 상기시키는 반면에 그러한 감각이 우리 눈 앞에 형상화 된 적이 없었기에 낯설게 느껴지기도 한다. 작품 그 자체는 설치되고 고정되어 멈추어있음에도 그가 만들어내는 형태는 우리에게 어떤 흐름이나 움직임을 상기시키고 눈 앞에서 그대로 멈춰버린 그 모습을 보며 우리는 일순간 무중력에 대한 환상을 꿈꾼다.
홍대에서 조각을 전공하고 뉴욕 비쥬얼 아트 스쿨에서 공부한 작가 최연우씨는 작은 잡지 조각들을 접거나 말아서 공간 속에 포함된 설치 작업을 한다. 우리의 눈으로 볼 수 없는 개념, 감각 그리고 영적인 것들을 표현하면서 시작된 그의 작품은 우리를 모호하고 특별한 사유 속으로 던져낸다.
인터뷰
까이에 드 서울 : 지금 하고계신 작업은 언제부터 시작하신건가요?
전에 하시던 작품도 같은 흐름이였는지 아니면 완전히 다른 스타일의 작품이였는지 궁금합니다.
최연우: 지금하고 있는 작업은 2006년부터 시작했습니다. 큰 틀에서 보자면 그 이전과 하는 이야기가 바뀌지는 않았지만, 작업방식이나 스타일은 완전히 바뀌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전에 하시던 작업은 어떤 형태였나요?
그 전에 하던 작업들은 일관된 형태가 따로 있진 않았습니다.
시멘트, 스테인레스 스틸, 나무, 주물,… 여러가지 형태와 재료들이 있었는데, 오브제 베이스의 작업은 아니었습니다.
작품에 영향을 준 개인적인 사건이나 계기가 있나요?
이전까지는 작업이 무엇인지 작가가 무엇인지 잘 알 수가 없어서 철학 공부도 해보고 혼자서 수 없이 많이 정의를 내려보기도하면서 많은 고민을 했습니다. 2005년 4월부터 2006년 5월까지 뉴욕에 머무르는 동안 Tom Friedman, Tara Donovan Anish Kapoor, Fred Sandback, Richard Serra 등의 많은 작가들의 작품을 접했는데 작품들을 보다가 문득 ‘아 너무나 아무것도 아닌 것들로 아무것도 아닌 것을 만들면서 즐겁게 놀았구나. ‘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토록 오랫동안 고민하고 찾아 헤매던 것이 거기에 다 있었죠. 작업 자체를 그저 보는 것이 아닌, 경험하는 순간이였던 것 같습니다. 2006년 한국에 돌아와 우연한 기회에 작업실을 가지게 되었고 1년 정도의 시간 동안 작업에 집중하게 되었습니다.
작품을 처음 시작할 때 형태를 이미 정해 놓으시나요? 혹은 작업을 진행하면서 자연스럽게 완성되나요?
공간을 먼저 보고 그 공간의 성격에 맞춰서 작업하는 경우가 많은 편입니다. 공간에 어울리는 형태의 느낌만 잡아놓고 구체적인 형태는 인스톨할 때 나오는 편이죠. 작업 자체가 설치작품이라 사실상 ‘작업’을 하는 시간은 처음 느낌 잡을 때와 마지막 설치하는 몇 시간 혹은 몇 일 동안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작품 하나 하나를 조각처럼 독립적으로 바라보시나요?
언제나 공간 전체를 함께 봅니다. ‘그 공간에 존재해야만하는’ 작품을 만드는 것에 집중합니다.
영감을 받는 다른 분야의 아티스트 작업이 있나요?
아티스트 작업 중에는 음악에서 힌트를 얻는 편입니다. 보통은 철학이나 이론 물리학 책에서 얻습니다.
음악에 많은 영향을 받는다고 하셨는데, 어떤 음악을 들으시는지 – 기억에 남은 곡이 있으신지요?
음악은 안 가리고 많이 듣는 편입니다. 작업할 때는 주로 클래식을 듣습니다. 바하, 베토벤, 모짜르트, 라흐마니노프, 쇼팽… 설치할 때는 베토벤 교향곡 5, 7번, 브람스 교향곡 1번, 라흐마니노프 피아노 협주곡 2번과 같은 대규모 편성을 듣는 편입니다. 바이올린은 기돈 크레머, 정경화, 첼로는 피에르 푸르니에, 모리스 장 드롱, 야노스 슈타커, 피아노는 에밀 길레스, 아루뚜루 베네딕트 미켈란젤리, 샹송 프랑소와, 마리아 조아오 피레스, 바이런 야니스, 빌헬름 켐프, 백건우, … 지휘자는 칼 뵘, 카롤루스 클라이버, 마리스 얀손스, 그외에는 마리아 칼라스, 엘리자베스 슈바르츠코프, 엘리 아멜링 같은 소프라노 등을 많이 듣는 편입니다. 클래식 음악 말고는 평소에는 Verve, Beck, Radiohead, Daft Punk, Steely Dan, 이문세, 조용필, 그 외 이름을 잘 모르는 요즘 한국 걸 그룹 노래. 거의 하루 종일 귀에 헤드폰이 걸려 있는 편입니다.
물리나 철학 책을 많이 읽으시는데, 물리나 철학이 예술에 영향을 주듯
예술이 그 반대로 물리나 철학에 영향력을 미친다고 생각하세요?
물론입니다. 제가 물리학자나 철학자가 아니기 때문에 그 쪽 입장에서 영향을 받는다 안 받는다 말할 수는 없지만, 모든 것은 서로 영향 속에 있다고 봅니다. 누구나 영감은 필요한 것이고 철학이나 종교, 또는 이론 물리학이 저에게 그렇듯이 예술도 분명 영감을 주고 있다고 믿습니다.
한국에서 공부한 뒤에 뉴욕에 가셨는데, 두 곳에서 공부하면서 어떤 차이점을 느끼셨는지 궁금합니다.
차이라기보다는 개인적으로 미국에서 공부하고 작업하면서 봐야하는 책이나 공부할 것이 점점 많아진다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서울이라는 도시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일단은 고향입니다. 항상 그리운 곳이기도합니다. 뉴욕에 살면서 서울을 보면 뉴욕보다 더 첨단을 걷는 도시라는 느낌을 받습니다.
까이에 드 서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