별들에게도 밤은 쓸쓸할까. 하찌 아저씨의 가늘고 긴 손가락으로 연주되는 우크렐레 악기에서는 말도 안될만큼 섬세한 연주가 흘러나오고 애리씨의 맑은 목소리가 그 멜로디에 은은하게 스며든다. ‘별들의 밤’, ‘꽃들이 피웠네’, ‘차라도 한잔’ – 노래 제목에서도 느껴지듯 일상에서 찾은 소소한 행복을 담은 하찌와 애리의 노래. 그들의 음악을 듣다보면 별도 달도 친구가 되고 그리운 누군가가 아련하게 마음속에 떠오를때면 이내 꽃잎과 함께 바람에 훌훌 날려버릴만큼 용기가 난다. 한 눈에 보기에는 묘한 구성을 한 음악밴드지만 마음을 맑게 해주는 그들의 노래를 듣다보면 ‘정말 멋진’이라는 감탄사가 문득 떠오른다.
애리씨는 춘향국악대전에서 판소리로 대상을 받은 주목받는 소리꾼이다. 분위기에 취해 눈을 감고 맑은 목소리로 ‘별들의 밤’을 부르기도하고 힘있게 ‘한오백년’을 뽑아낼때면 시원스러운 곡조에 흥이 난다.
1집 앨범에 수록된 모든 노래를 작곡한 하찌는 ‘Carmen Maki & Oz’라는 일본에서 잘 알려진 록밴드의 기타리스트로 활동했다. 우연히 본 사물놀이 공연에서 우리악기 ‘꽹과리’가 내는 다양한 소리에 반해 지금은 한국에서 활동하고 있다.
인터뷰
‘하찌와 애리’가 함께 만드는 음악에 대해서 소개해주세요.
앨범속 음악은 우크렐레 악기를 바탕으로 아기자기하고 경쾌한 느낌이에요. 개인적으로는 동요같다는 생각을 했었는데 실제로 아이와 엄마가 공연장에 많이들 오세요. 어떤분들은 자연주의음악이라고도 하시는데, 가사에 자연과 관련된 단어들이 워낙 많아서 1집을 만들때는 가급적 새, 바람, 꽃 – 그런 단어는 금지하자 라고 할 정도였어요. 그런데 생각해보면 아저씨와 저의 취향이 그런것 같아요. 지금은 2집을 준비중인데 그 금지어들은 여전히 사용되고 있거든요. 2집은 1집에 비해 좀 더 다양한 느낌이 나는 노래들을 담았어요. 평소에도 여러장르를 하찌와 애리만의 스타일로 바꿔 부르는것을 좋아해요. 예를 들자면 우리나라 전통민요나 트롯트, 동요, 옛날가요 등 그런걸 공연장에서 많이 시도해보고 반응을 얻으면 앨범으로도 진행이 되는것같아요.
두 분이 함께 음악을 하게되신 계기는? 그리고 서로에 대한 첫 인상도 궁금하네요.
하찌: 5년전 홍대레스트랑서 기타치면서 「한오백년」 부르는 신비로운 아가씨발견! 반했답니다.
애리: 아저씨가 기타를 치면서 한오백년을 부르고 있는 저를 발견하셨죠. 당시 저는 학교에 다니고 있었는데 대학생활이 너무 빠듯해서 한동안은 아저씨와 소식을 주고받지 못했어요. 그리고 1년 후 홍대부근 버스 안에서 우연히 서로 마주쳤는데 때마침 혼자 공연하러 가신다길래 – 그날 밤 바로 공연을 보러 갔습니다. 그리고 인연이 되어 여기까지 오게 됐어요. 첫인상은 아저씨가 저를 본것과 같이 동시에 같은 느낌일 것 같은데요. 저는 기타를 치면서 한오백년을 부르고 있었고 아저씨는 꽹과리를 치시잖아요. 서로 오묘한 조합이라고 생각했습니다.
하찌: 소녀적인 감성인지는 모르지만 – 작곡은 한 18살부터 시작했고 작사는 8년전부터 빈번히 하게 됐어요. 선율은 갑자기 하늘에서 내려오고, 가끔은 가사도 같이 떠오릅니다.
기타 대신 우크렐레라는 악기를 선택한 이유는 뭘까요?
하찌: 4년전에 제가 솔로활동을 동경에서 시작했을 때 우연히 우크렐레를 쳐봤는데 너무 소리가 예쁘고 또 그 소리에 위안을 받아서 이 악기에 반해버렸어요.
굉장히 맑은 소리가 나는 애리씨의 목소리는 원래 목소리인가요, 아니면 판소리를 하면서 많이 바뀐 목소리인가요?
판소리는 7살부터 시작해서 올해 20년차 됐어요. 이렇게 말하면 사람들이 ‘굉장히 일찍 시작하셨네요, 득음하셨겠네요?’ 하세요. 성경에도 나중된자가 먼저된다 하듯이 오래하는 것은 중요하지 않지만 소리공력이라는 것이 짧은 기간에 생기는것은 아니기때문에 대부분 어린나이에 시작하는 것 같아요. 그렇게 오랜 시간동안 목을 사용하면 성대가 상하기도 하고 굳은살도 생기면서 자연스럽게 쉰 목소리로 바뀌는데 저 같은 경우는 특이하게도 쉰 목소리가 아닙니다. 왜 그런지는 저도 잘 모르겠어요. 하지만 쓰임새에 따라 목소리가 달라지는 것 같아요. 하찌와애리를 할 때는 맑은목소리를 사용하고 판소리를 할 때는 굵은 목소리를 사용해요. 저는 사람들마다 한가지 목소리만 가지고있지는 않다고 생각해요. 저도 하찌와 애리를 하면서 맑은 소리를 낼 수있다는걸 알았거든요. 음악적이든 음악적이지 않던 목소리라는 것은 그런것 같아요.
영화 ‘서편제’를 보고 판소리를 시작했다고 알고있는데, 영화를 통해 판소리의 어떤 매력을 느꼈는지 궁금합니다.
그 당시 서편제라는 영화는 판소리 붐을 일으킬 정도로 파급력이 컸어요. 제가 7살 때 서편제가 개봉했는데, 당시 남녀노소에게 판소리에 대한 판타지를 많이 심어준 영화에요. 이 영화에 유명한 장면이 있어요. 아버지가 딸의 눈을 일부러 멀게해 혹독하게 소리를 시키는 장면인데 – 7살이 보기엔 굉장히 충격적이였지만 저는 송화가 되고싶었어요. 어릴적 저희 가족이 좀 유난스러운점이 있어서 방송이나 라디오에도 출연한적도 있었는데 가족들과 서편제를 패러디를 하기도 했어요. 이름이 동편제라구요, 그게 기억이 남아요.
판소리를 위해 산에 가신다고 하셨는데, 산에는 얼마나 머무르고 그 기간동안에는 어떤 생활을 하시나요?
판소리 한다고 하면 폭포밑이나 동굴 속에 들어가서 똥물을 먹고 피를 토해야 하지 않느냐 – 그런이야기를 하세요. 물론 옛날처럼 그런 원시적인 방법은 아니지만 도시를 떠나 한적한 곳을 찾아갑니다. 그것을 산공부라고 하는데 실제로 저는 산에 가요. 어릴적에는 정말 폭포 아래 바위 위에서 나무를 꺽어다 바위를 탕탕 치며 공부했었어요. 어릴적 판소리 스승님이 서편제에 나오는 아버지처럼 엄하고 혹독하셨거든요. 저는 지금도 그 공부법을 잊지 않고 산에 올라가서 폭포가 있으면 폭포 곁에 머무르고, 깊은 곳으로 들어가 돗자리를 펴놓고 시원하게 소리를 지릅니다. 요즘도 매일 산에 가는 꿈을 꿔요. 언제든지 산속으로 소리를 하러 가고싶어요. 소리를 지르는 것 외에 사색도 많이 합니다. 굉장히 조용하고 고독하기까지도 해요. 한번 들어가면 한 달정도 기간을 갖는데 핸드폰이나 인터넷을 사용하지 않는 것을 좋아해요. 다만 영화가 듬뿍담긴 노트북을 가져갑니다. 해가 떨어지면 자기전에 영화 한 편씩을 보고 여러가지 생각을 하죠. 지금도 산에 가고싶네요.
서울이라는 도시의 매력은 뭐라고 생각하세요? 그리고 두 분이 가장 좋아하는 공연 장소는 어디인가요?
애리: 저는 20년간 시골에서 살았습니다. 그리고 20살 때부터 도시에서 살고있죠. 그래서 시골의 자연스러움과 도시의 세렴됨 두 가지를 동시에 느끼고 사랑합니다. 시골에서는 감나무에 올라가 감을 따먹기도 하지만 도시에서는 감나무에 올라가는건 상상도 못할 일이죠. 하지만 서울 곳곳에 남아있는 고궁이나 옛스러운 골목골목을 다니면 그런 정취 또한 아름답습니다.
하찌: 도시이면서도 자연이 많고 산도 많아서 마음에 듭니다.
공연장은 다 좋아요. 최근에는 명동예술극장에서 5월8일부터 시작되는 연극「최막심」 음악 감독을 맡았습니다.
애리: 제가 가장 좋아하는 공연 장소는 홍대에 있는 벨로주라는 곳이에요. 홍대분위기의 편안한 클럽분위기도 있으면서 기성공연장의 퀄리티를 놓치지 않고 공간도 세련된 조화로운 공간이지요. 가장 좋은것은 스텝들의 친절한 분위기죠.
©까이에 드 서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