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와, The rain comes whenever I wish
두 사람의 무나씨를 보고 있으면 내 안의 감정을 한 편의 연극으로 보는 듯한 기분이 든다. 때로는 잔인하게, 하지만 어린아이처럼 순수한 두 사람을 지켜보는 일은 즐겁다. ‘무나씨’ 시리즈는 동양화를 전공한 김대현 작가가 2008년부터 작은 종이 위에 검은색 잉크만을 사용해 그려온 작업이다. ‘아무나’를 의미하는 무나씨를 통하여 먼 길을 우회하듯 표현된 감정이 ‘나만 그런 것이 아니구나’라는 생각에 외롭지가 않다. 김대현 작가에게 필요한 건 작지만 단단한 종이, 검은 잉크 그리고 얼마간 묻어두었던 감정이다. 다시 또 만나길 기대하며 안녕, 무나씨.
듣기, 듣기, Hearing, hearing
보기 보기, Seeing, seeing
말 더듬이, A stammerer
해방, Release
구원, Save
불면의 낮, Sleepless days
잘 부탁드립니다, Take this
너에 관한 추상 , An abstract romanticist
불면, Faces that I have to see before I sleep
보기 보기 보기, Example of seeing seeing
날마다 타인, Stacks of you
인터뷰
까이에 드 서울: 가장 먼저 moonassi의 의미가 뭔지 알고 싶어요. 어떻게 지어진 이름인가요?
김대현: 무나(moonaa)는 90년대 후반 PC통신 시절부터 온라인에서 쓰던 이름이었어요. 그러다 2006년에는 ‘무나’라는 필명으로 작은 수필집을 자비로 만든 적이 있었는데요, 자주 가던 ‘이리’라는 카페에서 판매했었어요. 그 이후로 카페에 갈 때마다 사장님이 ‘무나씨’라 불러주는 것이 좋았어요. 새로운 정체성을 갖게된 것 같았거든요. 그 때 이후로 무나씨라는 이름을 쓰고있습니다. 무나는 애초에 불교용어인 무아(無我)에서 따왔지만, ‘아무나’라는 의미도 가질 수 있어 좋아합니다. 첫 번째 그림책 제목이 ‘아무도’이기도 하고요.
동양화를 전공하셨는데 어떻게 moonassi 시리즈를 시작하게 되셨나요?
동양화를 배울 때는 그렇게 열심히 공부하지는 않았어요. 작업을 하겠다는 동료들이나 교수님들을 보며 질투나 조바심을 느끼기보다는 딴세상 사람들처럼 바라보며 동경하기만 했던 것 같아요. 졸업을 앞두고 졸업전시를 위해 이런저런 구상을 해보다가 무나씨 시리즈를 그리게 되었습니다. 몇 가지 조건을 가지고 시작했는데요, 이런 것이었어요. 1. 내가 잘 이해하고 있는 감정을 그릴 것. 2. 잘 그릴 수 있는 대상을 그릴 것. 3. 한정된 시간과 공간에서 간단한 재료만으로 그릴 수 있는 형식일 것(곧바로 취업을 할 생각이었기에). 그런 조건을 생각을 하며 강의 시간에 낙서를 하다 그리게 되었습니다.
moonassi를 그리면서 가장 기억에 남는 에피소드가 있다면 들려주세요. 그 외에 다른 그림도 그리시나요?
무나씨 그림이 조금씩 알려지기 시작하던 어느 날, 구글에서 moonassi라는 제목의 음악이 있는 걸 발견한 적이 있어요. 깜작 놀라 작곡가에게 연락을 해보니, 그 음악은 원래 무나씨 그림에서 영감을 얻어 제작한 어떤 무용 공연에 사용된 음악이라고 하더군요. 그렇게 또 안무가와 연락이 닿아 실제 상연되었던 무나씨 무용 동영상을 받아 보았을 때, 기분이 참 묘했어요. 그 밖에도 한 번도 가본 적 없는 세계 곳곳 사람들로부터 그림에 얽힌 사연들을 듣다보면, 그림을 통해 나 자신이 경계없이 확장되어 가는듯한 기분이 들기도 해요. 다른 그림은 머릿속으로만 그리고 있어요. 다음 달에 그릴 그림, 내년에 그릴 그림, 오 년 뒤, 십 년 뒤에 그릴 다른 그림을 생각해요.
외부와 내부의 경계라던가 얼굴이 자주 그려지는 것 같아요. 특별히 영감을 받는 소재나 순간이 있다면요?
특별한 계기라기보다는 성격 탓인것 같아요. 어려서부터 수줍음이 많았던 터라, 남들이 나를 어떻게 생각할까에 대해 무척 집착했던 것 같아요. 그러다보니 자연스럽게 내가 보는 나와 타자가 보는 나에 대한 경계가 점점 또렷하게 보이기 시작했어요. 그림 속에 주로 두 인물이 등장하는 것도 그런 이유일거에요. 그런 내 안의 부조리와 갈등들을 이해하고 극복하는 과정이 그림에 담겨져 있는 것 같아요. 그래서 일부러 그림의 소재에 대해 생각할 때 보다, 부지불식간에 과거의 어떤 순간들이 떠올라 그림을 그리게 되는 경우가 더 많은 것 같아요.
개인적으로 영향을 받은 작품이나 도서가 있나요?
동서고금의 철학서들을 즐겨 읽어요. 진지하게 연구하는 자세로 읽는다기보다는 흥미 위주로, 좋아하는 철학자들 위주로, 관심이 가는 계보를 따라 읽고 있습니다. 영향을 받았다고 할만한 도서라면, 엠마누엘 레비나스의 ’시간과 타자’와 앙리 베르그손의 ’창조적 진화’가 있습니다. 의외로 미술가들의 작품에서는 감흥을 느끼지 못하는 편인데, 현대미술 작가중엔 미셸 보렌만(Michael Borrenman)의 회화를 좋아합니다.
흑백만 사용해서 그리는 이유가 있나요?
애초에는 검정색이 가장 간단하게 준비할 수 있는 미술도구였기 때문에 사용했습니다. 물론 먹색을 거의 신성시 하는 동양미술을 전공한 영향도 있겠지요. 하지만 가장 큰 이유는 아마도, 나와 타자, 안과 밖, 빛과 어둠, 하나와 여럿, 등 양면적이고 반어적인 소재를 표현하기에 가장 적합하기 때문일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서울이란 도시에 대한 생각. 그리고 좋아하는 서울에서 좋아하는 장소가 있다면 알려주세요.
서울은 너무 빠르게 미래를 향해 달려가고 있는 특급열차 같습니다. 미래는 알 수 없는 미지의 무엇이어야 하는데, 서울은 왠지 이미 누군가에 의해 정해진 ‘미래적’이고 ’선진적’인 무언가에 홀려 뒤도 안돌아보고 앞으로 달아나고 있는 것 같습니다. 그 속도감 탓에 서울 사람들은 아름다운 것들과 고통스러운 것들에 대해 이야기를 나눌 여유도 없이 살아가고 있는 것 같아 안타깝습니다. 서울 마포구 합정동에 살 때에, 상수동 당인리길을 좋아했습니다. 합정역 근처 절두산 순교성지는 새벽에 산책하기에 좋습니다. 하지만 서울에서 가장 좋아하는 장소는 역시 우리집 책상 앞 의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