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축사 사무소 ‘사무소 효자동’이 자리잡은 서촌은 낮은 건물들이 경복궁 돌담길과 이웃하고 있어 정다우면서도 옛스러운 풍취도 느낄 수 있는 동네다. 다른 건축사무소들과는 달리 어떻게 동네 이름을 따서 ‘사무소 효자동’이라고 짓게 되었냐는 질문에 – 건축 사무소라고 단정 짓지 않는, 약간은 애매하면서도 따뜻한 느낌을 주는 이름을 짓고 싶었다고 얘기하는 서승모 건축가.
34세라는 젊은 나이에 자신의 건축 사무실을 열어 이제 40대로 막 접어든 그의 한옥집을 방문했다. 작은 주택들이 모여있는 골목길. 천장이 조금 낮은 문을 열고 들어가면서 느껴지는 작은 높이의 차이가 공간으로 들어간다는 아늑한 느낌을 주고, ‘ㅁ자형’ 집 가운데 위치한 중정으로 은은한 빛이 들어오고 있었다. 작지만 숨겨진 요소가 많아 지루하지 않은 공간이다. 매미 소리가 들리는 무더운 여름 – 인터뷰를 위해 들린 건축가의 한옥 집 중정을 통해 바라보는 하늘은 또 다른 정경이다.
인터뷰
까이에 드 서울 : ‘사무소 효자동’이라는 이름은 어떻게 짓게 되신건가요?
서승모 건축가: 처음에 이름을 지을 때 건축만 하는 사무소이고 싶지는 않았어요. 그래서 조금은 애매한, 중성적인 이름이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죠. 그리고 이름에서 따뜻한 느낌이 나는? 그러니까 조금은 따뜻하고 이상하면서 살짝 애매한 이름을 원했어요. 그래서 건축뿐만 아니라 뭔가 다른 것을 할 수 있는 사무실이였으면 좋겠다는 생각에 ‘사무소 효자동’이라고 짓게 됐죠.
사무소 효자동만의 건축 철학이나 색깔이 있다면?
솔직히 말해서 저희 사무실 상황에 ‘철학’이라는 말은 무거운 것 같아요. 사무실을 연지 이제 8년째인데 처음에는 인테리어 작업이 많이 들어왔고 건축 작업을 받기 시작한지는 3년 정도 됐어요. 휴먼스케일이나 빛에 대한 시각은 어느 정도 세워지기 시작했어요. 건축으로 들어가면서 더 큰 스케일에서 공간을 보는 법을 배워나가고 있어요.
저희 사무실에서 중요하게 생각하는 건 ‘틀’과 ‘선’이 에요. 틀이라고하면 건축에 대한 논리적인 접근을 의미하죠. 공간의 기능을 재구성하는 – 기존에 존재하는 스테레오 타입을 비꼬는 형식이 바로 틀이에요. 반면에 ‘선’은 제가 타고난 감각적인 부분이라고 보시면 되요. 틀이 지적인 아름다움이라면 선은 감각적이고 직관적인 – 그리고 비논리적일 수도 있지만 – 제가 생각할 때 아름답다고 느껴지는 것들이죠. 사실 건축에서 이런 ‘선’에 대한 부분은 건축주분이 저희에게 모든 것을 맡길 수 있는지, 시공비가 얼마인지에 따라서 많이 바뀔 수 있어요. ‘선’에 대한 부분은 아직은 건축 작업보다는 인테리어 작업에서 드러나고 있는 상황이죠. 사실 저희가 반드시 건축적으로 선진국이라고는 할 수는 없잖아요. 다세대 건축 같은 프로젝트를 지을 때 시공비는 대부분 최저 수준으로 정리가 되죠. 그런 상황에서 아직까지는 ‘선’적인 부분을 드러낼 기회가 많지는 않았어요.
젊은 나이에 사무실을 연다고 했을 때 주위에서 우려의 말이 있지 않았나요?
당시에는 제가 일본 건축학교에서 조수일을 하고 있었어요. 그런데 사실 건축의 묘미는 실제로 지어질 때 느끼는 어떤 쾌감 같은 것에 있거든요. 그렇게 계속 공부만 하고 있다가는 머리만 커지고 작은 일에 만족할 수 없을 것 같았죠. 저는 작은 일에도 머리를 조아리고 일을 하고 싶었거든요. 그렇게 일을 할 수 있는 나이가 35살은 조금 많은 것처럼 느껴졌죠. 그래서 무작정 사무실을 열었어요. 사실 처음 사무실을 열고 3년 정도는 일이 거의 없었어요. 제 나이에 사무실을 연지 8년 째 되는 사람은 드물죠. 보통은 지금 제 나이가 돼서야 사무실을 열기 시작해요. 저는 좋은 선택이었다고 생각해요. 다른 사람들이 지금 제 나이에 겪는 것들을 저는 더 젊었을 때 다 겪었으니까요.
어떻게 한옥 집을 고쳐서 살게 되신건가요?
당시에는 지금처럼 한옥 ‘붐’ 정도는 아니였어요. 제가 살고 있는 서촌(효자동)으로 이사하고 3년 정도 지난 후부터 변하기 시작한 것 같아요. 사실 ‘한옥’을 고쳐서 살아야 겠다는 마음은 아니였어요. 당시에 저희가 돈이 그렇게 많지 않았는데 서울에서 그 돈으로 제 공간을 가지기는 힘들었거든요. 당시에는 그냥 마을 같은 느낌. 따뜻하고 편안한 느낌의 동네를 찾았어요. 처음에는 삼청동쪽에 위치한 팔판동을 알아봤었는데 가격이 서촌보다 훨씬 비쌌어요. 그러다가 효자동 쪽을 알아보게 됐죠. 평지고 마을 같은 느낌도 있고, 거미줄처럼 얽힌 길들이 정다운 느낌을 주고, 시장도 두 개나 있죠. 그런데 한옥들은 땅이 작잖아요. 양옥집만 해도 땅이 넓어서 가격이 비쌌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한옥집으로 이사오게 된거죠.
지금 살고 계신 한옥집을 어떤식으로 바꾸신건가요?
“원래는 ㄷ자 한옥집이였는데 공간을 정리하면서 ㅁ자 집으로 바꿨어요. 20평정도 남짓되는 작은 집이였기 때문에 조금 큰 느낌이 나기를 바랬거든요. 그래서 마당의 바닦 마감을 내부 마감과 같은 재료를 써서 공간이 연속적으로 정리가 되어 있는 편이에요. 남쪽 방향으로 지붕이 사선으로 올라가있는데 사실 옆에 큰 건물이 저희 집을 내려다보는게 싫었어요. 그래서 이 부분을 막는 대신 빛이 들어오게 안쪽 동선에 고창(창문 위쪽에 낸 작은 창)을 넣었어요.
저는 개인적으로 안으로 열린 집을 좋아해요. 한옥은 중정을 통해서 빛이 안으로 들어오기 때문에 그런면에서 형식적으로 저희에게 맞는 것 같아요. 한옥의 미적 특성을 살린다기보다는 한옥의 구조, 구성에 관심이 많아서 기본적인 구조체는 놔두고 장식적인 부분은 지워버렸어요. 부분마다 내려오는 수벽(창 또는 문을 내기 위하여 설치된 벽 중의 개구측부)이 높이에 차이를 줘서 공간이 좀 더 풍부한 듯한 느낌을 주죠. 구조물들이 2메타 3메타 단위로 내려오는데 사실 이 끝에서 저 끝까지 10미터가 안되는 작은 공간이에요. 이런식의 수벽이 없었으면 공간이 더 작아보였을것 같아요.”
작업에 동양적인 색이 많이 드러난다는 인상을 받았는데, 한국 전통 건축에서 영감을 얻기도 하시나요?
전통 건축을 계속 공부는 하려고 하고 있어요. 물론 한국 건축가로써 한국성에 대해서 고민은 하고 있지만 아직까지는 어떤 해결책을 제시할 수 있는 정도는 아닌 것 같아요. 단지 건축적인 태도로 보자면 공간이 물러나는 느낌을 좋아해요. 자기를 주장하지 않는. 한발짝 물러나 사람이 돋보이거나 거기에 놓인 대상이 드러나는 공간. 예를 들면 빛으로 가득 찬 공간, 이런 것들을 좋아하죠. 어쩌면 그런 요소가 동양적인 색체로 느껴졌을지도 모르겠네요.
마지막으로 – 서울이라는 도시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세요?
다양한 듯 보이지만 사실 다양하지 않다는 느낌을 받아요. 어쨌거나 구도심(강북)은 역사가 오래된 도시잖아요. 거기에 근대도 있고 현대도 있고. 그런 것들이 얽혀 있는 모습이 ‘아름답다’라고 하기는 힘들어도 삶의 풍경은 굉장히 매력적인 것 같아요. 어제도 극장에 갔다가 길가에 온통 고기집 좌판이 놓인 ‘갈매기 골목’이란 곳을 알게됐죠. 이런 풍경들에서 뭔가 힘, 에너지 같은? 뭔가 묘한 매력을 느꼈어요. 지금 제가 살고 있는 효자동도 점점 재밌어지고 있어요. 색다르지만 그게 어색하지가 않아요. 일본에서 동경을 얘기할 때 ‘혼성도시’라는 이야기를 많이 하는데 20년 후의 서울은 동경과는 다를 것 같아요. 서울 시청사를 예로 들면 굉장히 공격적이고 미래적인 디자인이잖아요. 그래도 중상위권 나라에서 그런 디자인의 시청사가 지어지기는 힘들껄요. 그렇게 센 디자인이. 처음에는 저도 낯설었는데 지금은 정이 들었어요. 서울에서는 그런 것들이 가능한 것 같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