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초 한글은 읽혀지기 위해 만들어졌다. 한글의 형태는 펜이나 붓 같은 필기구나 손의 움직임에 적합하게 고안된 것이 아니라, 목판에 지식을 새겨 전파하기 위해 디자인되었다. 그러나 훗날 사람들은 이를 붓으로 썼다. 한글의 기하학은 인간의 손이라는 일종의 생물학적 필터링을 거치면서 획의 방향, 순서, 비례감이 추가로 정의되었으며, 읽기와 쓰기라는 두 가지의 속성을 모두 지닌 하나의 온전한 문자가 되었다. 그런데 21세기, 우리는 이제 문자를 쓰지 않고 친다. 세상의 문자들은 이제 입력 행위라는 기계적 조작의 대상이 되었다.”
‘획으로 쓰는 글씨’는 우리에게 익숙하게 사용되고 있는 컴퓨터 자판을 뒤로하고 한글을 입력하기위해 고안된 새로운 형태의 기계다. 아날로그 시대와 디지털 시대 사이에서 과도기를 겪은 김경욱 작가는 ‘한글 타이핑’이라는 갑작스러운 과제를 떠맡은 세대로 그에게 알파벳을 위해 만들어진 자판에 덧씌운 한글은 맞지 않는 옷처럼 불편하게만 느껴진다.
“세상에는 영문처럼 타이핑이 되는 글자가 있고 한자처럼 타이핑이 되지 않는 글도 있다.” 지역과 환경, 사람의 기질과 풍습, 호흡, 발성과 같은 다양한 영향을 받는 언어는 그마다 자신에게 맞는 고유의 문자를 필요로 한다. 그런 이유로 중국과 다른 우리 발음을 정확히 적어내기 위해 만들어진 것이 한글이다.
하지만 갑자기 들이닥친 디지털 시대에 다양한 나라의 언어들은 미국에서 들여온 컴퓨터 자판에 자신을 맞춰야 했다. 작가는 어느날 갑자기 등장한, 영문을 위해 만들어진 자판에 한글을 그리고 한글을 구사하는 자신을 맞추는 행위에서 모순성을 느낀다. ‘획으로 쓰는 글씨’는 붓과 펜을 지나 현대에 와서는 기계적 조작의 대상이 된 한글 고유의 가능성에 초점을 맞춰 새로운 형태를 찾고자 하는 그의 새로운 탐색이자 실험이다.
컴퓨터 자판은 타자기에서 유래되었는데, 당시 미국과 유럽에서 발명된 타자기 종류만 2천종이 넘는다고 한다.
ⓒWikipedia ⓒThe Office Museum
인터뷰
까이에 드 서울: 어떤 계기로 ‘획으로 쓰는 글씨’ 프로젝트를 시작하게 됐나요?
저희 세대는 대학생이 되어서야 컴퓨터가 대중적으로 널리 보급되기 시작됐습니다. 그래서 성인이 된 후에야 처음 한글 키보드를 접한 사람이 많았는데, 개인적으로 PC의 한글 자판을 처음 배울 때의 어려웠던 기억이 생생합니다. 우선, 키보드의 어느 위치에 무슨 자소가 있는지에 대한 패턴이 없었기 때문에 이는 경험으로 익히는 수 밖에 없었습니다. 자소의 위치에 익숙해진 후에는 자판을 보지 않고 타이핑하는 단계로 넘어가는데 이 역시 간단히 넘어갈 수 있는 과정은 아니었습니다. 그리고 이 언덕을 모두 넘은 사람들에게는 빠른 문자입력이라는 선물이 주어졌습니다. 당시에는 어려서 잘 몰랐지만, 이렇게 ‘옷에 몸을 맞추는 행위’를 긴 시간동안 대다수가 암묵적으로 요구당하는 일은 기술의 세계에서는 꽤 드문 케이스라는 것을 나중에 깨닫게 되었습니다. 기술은 인간을 위해 존재하는 것 아닌가요. 글을 쓰기 위해 손과 뇌의 신경망을 새로이 만들어가는 그 과정을 왜 거쳐야만 하게 되었는지 궁금해서 좀 알아보았더니, 그 이유는 영문을 타이핑하기 위해서 만들어진 키보드라는 물건으로 한글을 쓰려다보니 그렇게 된 것이었죠.
‘그렇다면, 왜 한글을 영문키보드에 끼워 넣었을까.’
모두의 컴퓨터 앞에 한글과 영문 각각 두 개의 자판을 놓고 쓰게 할 수는 없고, 그렇다고 가끔이라도 꼭 쓰게 되는 영문 키보드를 없앨 수도 없었습니다. 그렇게 영문의 틀 속으로 한글이 비집고 들어선거죠. (PC의 모든 개발언어는 영문을 기반으로 만들어졌습니다.) 이 키보드라는 물건의 ‘인터페이스’로서의 원형은 타이프라이터라는 기계로부터 비롯되었는데, 타이프라이터는 백여 년 전에 기계로서의 한계를 지닌 채 구상된 방식입니다. 이제 디지털의 시대가 되었고 새로운 기술이 새로운 접근을 가능케 하리라고 생각했습니다.
‘한글’이 주는 고유함은 무엇이라고 생각하세요?
‘군더더기 없는 심플함이 시대와 만나 빚어낸 가능성’
한글은 ‘백성을 위해’ 창제되었다고 말해지지만, 조금 더 명확히 표현하자면 한글은 ‘백성에게 읽혀지기 위해서’ 창제된 것에 가깝습니다. 한글을 창제할 당시 주 목적은 대량 목판인쇄를 통한 백성교육수단으로서의 문자였습니다. 세종은 문자의 두 축인 쓰기와 읽기 중 ‘읽기’를 백성에게 기대했던 거죠. 따라서 한글은 붓에 의한 움직임보다는 인쇄에 적합한 조형적 특징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당시에는 예상치 못했겠지만, 한글은 그렇게 태어난 이례적인 조형적 단순함으로 인해 디지털 시대에 새로운 의미를 갖게 되었습니다.
24개의 자소를 ‘획으로 쓰는 글씨’처럼 7개의 요소로 인수분해할 수도 있고, 천지인방식처럼 ‘자음 + 3모음’으로 재구성할 수도 있습니다. 자유자재로 재조합이 될 수 있는 특징이 디지털시대의 소프트함을 닮아있습니다. 중국의 한자나 일본의 히라가나, 서구의 로마자가 이렇게 될 리가 없죠. 세종이 추구했던 심플함이 빚어낸 큰 가능성. 그것이 한글이 가진 현대의 가장 큰 의미라고 생각합니다.
프로젝트가 완성되었을 때 한국사람들과 외국사람들의 반응은 어땠는지 궁금하네요.
우리나라 국민들에게 한가지 재미있었던 현상은, 제가 만난 한국사람들은 대부분 한글에 대한 독특한 자기만의 생각을 하나 정도 가지고 있는 것이었죠. 화가, 서점의 주인, 정치인, 엔지니어, 서예가등 다양한 직업이나 지위의 한국인들이 한글에 대해서는 자기만의 통찰력과 철학을 가지고 있는 듯 보였습니다. 그 내용들도 매우 참신해서, 지금까지 한번도 생각해보지 못한 한글의 숨겨진 측면에 대해서 이야기하는 사람들을 많이 보았죠. 언젠가 그 내용들을 묶어서 책 한권을 내어도 좋겠다 생각했을 만큼 재미있는 다양한 이야기들을 들을 수 있었습니다.
한편, 외국에서의 반응 중에 기억에 남는 것은 워쇼스키 감독의 ‘Cloud Atlas’라는 영화에 등장할 뻔 했던 일입니다. ‘클라우드 아틀라스’라는 영화는 미래의 서울이 배경으로 등장하는 SF영화인데, 영화에 등장하는 24세기의 서울이라면 지금의 키보드가 아닌 ‘획으로 쓰는 글씨’와 같은 방식으로 문자를 입력할 것 같다는 생각을 워쇼스키 감독과 원작자에게 제안했었고, 그들이 영화에서 이 장면을 꼭 쓰고 싶어해서 한동안 작업에 대해서 조율을 했던 적이 있습니다. 결국 다른 문제로 (개발여건과 일정등) 현실화되진 못했지만.. 그들도 한글이 가진 독특한 조형감과 그를 구현하는 독특한 입력방식에 대해 미래적이라고 느꼈으리라 생각합니다.
마지막으로, 서울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서울은 옆으로 위로 그리고 시간의 축으로 구불구불한 도시인 것 같습니다. 그래서 여기 저기 숨겨진 것이 많은 도시인 것 같아요. 개인적으로, 뉴욕이나 도쿄등 외국의 대도시에서 생활해본 적이 있지만, 아직 서울 이상 다양하다는 느낌을 받은 곳은 없습니다. 특히 강북의 부암동이나 삼청동처럼 상하좌우 및 시간의 축이 모두 다채로운 동네들이 특히 재미있다고 생각합니다.
저 코너를 돌면 어떤 풍경이 펼쳐질지 전혀 예상이 안될 정도로 시간적 공간적 기대감을 갖게 하는 힘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마치 테마파크라도 간 것처럼, 단지 걷는 것 만으로도 즐거워지고 많은 생각을 하게 됩니다. 개인적으로 외국에 놀러가면 잘 알려진 관광지보다는 삶과 시간의 흔적이 남아있는 곳을 찾아들어가고 싶어하는데, 외국인들도 명동이나 남대문 뿐만 아니라, 이곳 저곳 서울의 구불구불한 깊은 곳들을 잘 찾아다니길 기대합니다. 무언가 그들을 위한 구불구불한 가이드가 필요할지도 모르겠네요.
김경욱은 디자인을 전공하고, 뉴욕의 The Smiley Corporation의 디자인 디렉터, 마운틴 뷰에 있는 NHN USA의 디자인 그룹장, 일본 도쿄의 NHN Japan에서 수 년간 UX 디자인 센터장으로 일했다. 이 후 한국에서 ‘획으로 쓰는 글씨’라는 한글 인터페이스 프로젝트를 진행하여, 개인 프로젝트로서는 이례적으로 iPad2, BMW M6등과 함께 독일 iF 디자인 어워드 2012에서 최고상인 금상을 수상하였다.
홈페이지 ‘획으로 쓴 글씨’에 프로젝트에 대한 더 자세한 설명이 있습니다.
http://www.strokewrit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