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리 가도 아파트 단지 속이었다. 강원도에 가보았을 때 가도 가도 산이고 또 산이고 또 산이던 것과 느낌이 비슷했다. 그러나 산의 곡선과 달리 끝없는 직선과 직각의 세계였다. – 김채원 <푸른 미로>, 지붕 밑의 바이올린
아파트에 대한 시선은 부정적이다. 위협적으로 솟은 그네들의 높은 키에 우리들의 시선은 꼬꾸라지고, 반복적인 패턴이 위로 또 그 위로 계속해서 적층된다. 빨래를 널던 마당도 그 마당에서 뛰놀던 귀여운 발발이도 어르고 달래서 콤팩트하게 만들어진 한 곽의 상자 안으로 들여보낸다. 대규모 아파트 단지의 모습은 서울이라는 도시에 묘한 정경을 만들어낸다. ‘아파트 숲’이라 불리는 이 도시에 유일한 풍경을 부여하면서도 거기에서 5000년의 세월에 빛나는 대한민국의 유구한 역사는 찾아보기 힘들다.
그런데 이렇게 내리 비판하는 아파트에서 사는 삶이란 이상하게 나쁘지 않다. 모든 공간이 서랍장 속 옷처럼 차곡차곡 정리된 편리한 레디메이드 인생. 낮은 벽돌 건물 넘어로 비죽 솟아 있는 대규모의 아파트 단지들 – 우리의 삶 깊숙히 파고들어 이제는 하나의 상징물이 되어버린 아파트는 어떻게 이 땅에 상륙했나.
아파트가 처음 등장했을 때 일상적인 주거형태로 받아들여지기까지는 많은 시간을 필요로 했다. 2층 집도 흔하지 않았던 터라 1960년대 처음 등장한 ‘아파트’를 바라보는 사람들의 시선에는 당혹감과 의아함이 묻어났고, 그 높은 곳에서 어떻게 잠을 이룰지 궁금했던 터였다. 아파트 첫 세대인 6층짜리 <마포아파트>가 1962년 완공되었을 때 입주자가 전체 세대의 십분의 일 정도였다는 사실이 당시 아파트에 대한 사람들의 심리를 보여준다. ‘땅’의 가치를 중요시 했던 그네들에게 ‘내 땅’ 없이 허공에 지어지는 아파트란 ‘정다운 나의 집’으로 여기기에 난해한 주거공간이었던 것이다.
<머리 위에서 불을 때고 그 머리 위에서 또 불을 때고, 오줌똥을 싸고, 그 아래에서 밥을 먹고… 어찌됐건 서울사람이란 보배운데 없고 징상스러운 인종들이다 싶었다. 그런데 더욱 놀란 것은 그 아파트라는 집에 상상할 수조차 없도록 비싼 것이었다.> 작가 조정례는 당시 새로운 거주 형태였던 아파트에 대한 사람들의 생각을 자신의 소설 ‘비탈진 음지’를 통해 소탈하게 보여준다.
마포아파트(위), 70년대 청계천 판자촌(아래) 출처:서울 역사 박물관
그런데 5년도 채 안된 1970년대에 들어서면서 아파트에 대한 이러한 사람들의 인식은 신지식인 또는 중산층이 사는 주거공간으로 바뀌게 된다. 6.25 전쟁 직후 (1950-1953) 먹고 사는 것 자체가 전쟁터였던 사람들은 돈을 벌기 위해 도시로 밀려들어 왔고 이들을 받아들이기에 단층 주택의 수용량은 턱없이 부족했던 것이다. 사실 불법 주거인 판잣집들 사이에 지어지는 아파트는 고급 단독주택 다음으로 괜찮은 주거공간이었다.
<사층 꼭대기의 조그마한 설희의 방에서 새어나오는 희미한 불빛. 어떻게 보면 꼭 커다란 별 같다.
영호 : 꼭 별 빛 같애.
설희: 뭐가?
영화: 설희네 방 불빛이.> – 오발탄, 한국시나리오선집 제3권 1961-1965
영화 오발탄(1961)에서 아파트 사 층에 사는 설희네는 영호에게 다가가기 힘든 ‘별’같은 존재다. 판자촌으로 득실되는 저 아랫 생활과는 대비되는 저 윗 사람들의 삶. 퇴역 군인인 그가 아픈 노모와 영양실조에 걸린 아내와 살아가는 판잣집에서 벗어나 불쑥 찾아가는 모던한 설희의 아파트는 그 무거운 삶으로부터의 도피처다. 영호에게 설희의 아파트에서 내려다 보는 도시의 풍경은 그제까지 보아오던 그것과는 퍽이나 다른 것이었다. 겹겹이 쌓인 판자촌에서 벗어나 저 위에서 그들을 내려다본다는 것은 일종의 공간적, 사회적 ‘상승감’을 가져다 줬고 위에서 아래로 내려다보는 ‘권력’ 행위와 자연스럽게 연결되기도 했다.
마당을 끼고 내부와 외부가 자연스럽게 연결되어 동선을 그리던 전통주택과는 달리 하나의 유닛으로 이루어진 아파트에 산다는 것은 서구식 생활 방식을 받아들인다는 것을 의미하기도 했다. 더 이상 방바닦에 앉아 생활하고 또 거기에 이불을 깔고 자는 전통적인 좌식 생활이 아니라 테이블에 앉아 식사를 하고 침대에 누워서 잠을 청하는 서양식 입식 생활을 의미했다. 이러한 이유로 당시의 영화나 소설에서 아파트에 사는 이들은 종종 ‘서양문물을 받아들인’, 돈 많은 신 지식인 혹은 아프레걸(전후여성을 지칭하는 말로 전쟁 직후 새로운 성향을 가진 여성들을 뜻한다. 주로 성적으로 분방하고 서구지향적인 여성을 의미한다.)로 묘사된다.
영화 오발탄 – 유현목 감독
양장을 입은 그녀들은 도발적이다. 담배를 피워 물고 짙은 화장을 한 채 도시를 거닌다. 그녀들은 당당하고, 당당한 만큼이나 쉬운 미소를 흘린다. 아파트에 사는 여성은 서양식 옷을 입고 영어를 자유롭게 구사하는 아프레걸들. 그리고 자유분방한 그녀들이 사는, 익명성으로 무장된 아파트는 종종 불륜을 저지르기에 적당한 장소로 그려진다. 아파트가 세련된 도시적 삶의 공간이기는 했지만 여전히 안정적인 ‘나의 집’으로 그려지지는 않았다. ‘내 것’이 아닌, 바다 건너 온 아파트를 향햔 사람들의 시선이 그저 곱지만은 않았던 것이다.
시간이 지나면서 정부는 단독주택에서 아파트식 주택으로 주거문제를 해결하기 시작했고 돈 없는 거주민들을 위한 시민아파트 건설도 시작된다. 그런데 같은 시기에 지어진 – 등마루 아파트, 남아현 아파트 같은 – 몇 몇 아파트는 이런 대규모 단지와는 많이 다른 모습이다. 특히 민간에 의해 개발된 집합 주거는 규모면에서 작기 때문에 주변 환경에 대응하기가 더욱 용이 했다. 이들 오래된 아파트들은 반복적인 패턴으로 지어지는 일방적인 대규모 아파트 단지와는 달리 주변과의 조화를 생각하며 지어졌고, 새로운 주거 공간을 만들기 위해 건축가가 고심한 흔적이 고스란히 남아있다. 낮은 골목길, 이제는 사람들의 눈에도 뛰지 않는 오래된 건물임에도 그 안을 들여다보면 그저 놀랍고 새로운 모습이 많이 발견된다.
“그래도 분위기 하난 좋았지. 비 오면 빈대떡 부쳐서 나눠 먹고, 봄이면 남산에 벚꽃놀이 가고, 할머니들은 꼭 시골마냥 공터에 장독대 묻어 놓고 말이죠. 사람들이 이 아파트가 없어져도 동네에서 또 이렇게 모여 살자고 하네요.” – 경향신문, 2006.4.13 인터뷰 중
1970년대에 준공된 아파트에서 종종 찾아볼 수 있었던 건물 내부의 중정(건물 안의 작은 뜰)은 작은 공용 공간으로 도시주거로써 많은 의미를 가져다 줬다. 주민들은 여기서 살갑게 김치를 담그기도 하고 함께 청소도 하고 화분에 물도 주며 이웃간의 커뮤니티 공간을 만들었고 그야말로 작은 마을을 이루며 살았던 것이다.
등마루 아파트 (1970) – 반복적인 패턴이 아니라 지형을 맞게 변화를 준 모습이다.
회현 제2시범아파트(1970), 남아현 아파트(1970) – 지금은 사라진 내부의 중정, 거주자들의 공용 공간이자 작은 정원이기도 했다.
그런데 1975년부터 1980년대 중반까지 초대형 아파트 단지 건설이 성공적으로 이루어지면서 아파트는 중산층과 상류층의 거주지로 각광받기 시작한다. 아파트는 발빠르게 변화했고 그 변화는 성공적이었다. 돈이 없는 거주민들을 위한 시민아파트에서 사회 상류층을 위한 고급 주거공간으로 조금씩 변해간다.
« 아파트의 상품화에 관한 시점은 대략 1980년대 후반으로 보는 것이 일반적이다. 민간업체들이 주택 시장에서 주도권을 잡으면서 자사의 분양률을 높이려는 경쟁 체제로 들어간 것을 아파트를 본격적으로 상품으로 인식하게 된 계기로 보는 것이다. » – 김민지, ‘TV광고의 기호학적 분석을 통해서 드러난 아파트 담론 변화에 관한 연구’, 서강대학교 석사학위논문, 2007, 10쪽
대략 1980년대부터 민간업체들이 아파트 건설의 주도권을 잡으면서 본격적으로 아파트의 상품화가 시작된다. 시기별로 지어지는 아파트의 이름만 봐도 당시의 흐름을 알 수 있는데 초기에 지어진 아파트들은(1950-1970) 지역의 이름을 따서 ‘종암 아파트’, ‘마포 아파트’처럼 단순하게 지어졌다. 그러다 민간업체들이 아파트 건설 시장에 뛰어들면서 자신들의 회사명을 딴 ‘현대 아파트’나 ‘삼성 아파트’식의 이름을 붙이기 시작했고 – 아파트의 이미지는 곧 회사의 이미지와 결부됐다.
1990년 대 아파트 경쟁이 과열화 되면서 이런식의 단순한 이미지는 사람들의 이목을 끄는데 한계가 있었고 ‘살기 좋고 고급스러운 아파트’라는 이미지를 구축하기 위해 새로운 이름을 찾기 시작한다. 아파트는 이제 독자성을 지닌 하나의 ‘건축물’이라기 보다는 자신이 속한 브랜드의 ‘제품’으로써 존재했다. 쉐르빌(Chère ville), 타워팰리스(Tower Palace), 롯데 캐슬(Lotte Castle) – 소비자들이 눈으로 쫓는 광고 속 아파트에서 보내는 멋진 하루 – 더 이상 ‘내’가 사는 아파트는 단순히 콘크리트로 지은 직사각형 건물만을 의미하지는 않았다. ‘롯데 캐슬’이라는 근사한 이미지만이 머릿속을 맴돌고 있었다.
@ 까이에 드 서울
참고 도서, 사진 출처 – 대한민국 아파트 발굴사, 종암에서 힐탑까지, 1세대 아파트 탐사의 기록, 장림종, 박진희 지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