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듯하게 자른 검은 머리, 그 뒤로 보일 듯 말듯 가려진 드로잉과 사선을 그리는 긴 플레어 스커트가 서로 겹쳐지면서 묘하게 시선을 잡아당긴다. 기타를 치기 시작하면서 일기 쓰듯 조금씩 그려낸 그녀의 음악이 앨범 ‘욘욘슨’에 담겨있다. 이랑씨가 맥북 내장 마이크를 이용해서 직접 녹음을 했다고. 고양이의 울음소리라던가 – 자연스러운 생활 잡음이 옅게 섞여 들어가 있는데 그런면이 오히려 노래와 잘 맞아떨어진다는 느낌이다. 새침한 듯 곧은 목소리에 기분좋은 멜로디- 입에서 자연스럽게 흘러나오는 가사들이 어느새 반복하다보면 머리 안으로 저벅저벅 걸어 들어와 거기에 담긴 유머에 다시 한 번 반하게 되는 이랑밴드의 음악. ‘내 이름은 욘욘슨, 위스콘신에서 일하죠.’를 계속 부르고 있으니 옆에 있던 언니가 가보지도 않은 위스콘신은 왜이렇게 부르냐고 묻는다. 그건 나도 잘 모르겠다.
이랑밴드는 노래하는 ‘이랑’씨와 코러스를 맡은 ‘해미’씨 그리고 드럼을 연주하는 ‘ 인철’씨가 합류하면서 만들어진 음악밴드다.
인터뷰
까이에 드 서울 : 이랑씨는 본명이라고 들었는데, 무슨 한자 쓰시나요? 그냥 왠지 궁금해서.
이랑 : 물결 瀧랑이라는 한자입니다. 그런데 한자로 읽을 때(음독)는 ‘롱’이라고 읽는다고 알고 있습니다.
– 노래 제목들이 묘하게 닮은 듯한 느낌을 받았는데 특별히 끌리는 단어들의 조합이 있나요?
제목을 생각해서 지었다기보다는. 저는 노래가 생각나면 바로 맥북에 녹음을 해서 기록하는 편인데, 녹음프로그램(가라지밴드)을 열면 처음에 파일명을 쓰는 창이 나옵니다. 그때 그때 노래 구절중에 생각나는 단어로 파일명을 만들다 보니, 결국 그게 제목이 된 것 같습니다. 노래 제목의 느낌이 닮았는지 저는 잘 모르겠는데- 좋아하는 단어나 끌리는 단어는 단순한 명사나 간단하고 화려하지 않은 이름들인것 같습니다. 서울우유. 매일우유. 제육볶음..치즈김밥 그런 것들.
– 정갈한 까만 머리와 가르마 – 머리는 어떻게 기르기 시작하신건가요? 아, 잘라버리고 싶다 – 이런 순간도 있나요?
커뮤니케이션이 잘 되지 않는 경우가 많아서 미용실에 가는 게 항상 두렵고, 정해놓고 다니는 미용실도 없고 – 미용실에 가면 돈이 많이 들어서 머리를 잘 안 자르다 보니 머리가 길게 자랐습니다. 앞 가르마의 경우는 초등학교 졸업앨범을 봐도 앞 가르마를 하고 있던 걸 보아, 어릴 적 부터 자연히 그렇게 된 것 같습니다. ‘아, 머리 자르고 싶다’는 순간은 꽤 자주 찾아오는데, 그 생각을 약 4년만에 실행에 옮겨 지금은 단발머리가 되어있습니다. 이번에 미용실은 학교앞에 있는 ‘미가헤어’를 이용하였는데 거기가 컷트가 만원이라 가격이 적절해서 좋았습니다. 졸업해서 학교 앞에 갈 일이 없다가 제 영화에 출연했던 배우가 연극에 초대해서 학교에서 연극을 보고 나와 시간이 뜨길래 충동적으로 머리를 잘랐습니다.
– 어린시절이 궁금해요 – 자유로운 환경 VS 엄격한 환경?
1남2녀중 제가 차녀인데, 막내동생이 장애가 있어서 그 애가 태어난 뒤부터 부모님이 동생 치료에 전념해야했기 때문에 저는 혼자 이것저것 해야하는 일이 많았습니다. 그래서 저는 어릴 땐 언제나 언니를 따라다니면서 놀았습니다. 그런데 언니가 초등학교 고학년이 되면서 저랑 놀아주지를 않아서 그때부터는 독립적으로 행동했던 것 같습니다.
– 왠지 모르게 처음 앨범 자켓 사진을 본 순간 새까만 ‘고래’가 떠올랐어요. 머리 끝 단아한 선이 고래 꼬리를 떠올려서일까요. 컨셉은 혼자 잡으신건가요? 고양이라던가, 흰 브라우스라던가, 흰벽에 걸린 그리다 만듯한 드로잉이라던가.
네, 컨셉은 혼자 잡았습니다. 사진도 혼자(디카의 타이머를 이용해서) 찍었습니다. 옷과, 고양이, 흰벽의 드로잉 모두 제 집과 제 방에 있는 것들입니다. 원래는 새를 그린 드로잉 옆에 고양이를 안고 서 있는 모습을 찍으려고 한 건데 고양이가 자꾸 발버둥치는 바람에 휘청거리다 그 순간이 찍혔는데 그게 느낌이 좋아서, 그림이 좀 가려졌지만 그 사진을 선택했습니다. (참고로 그 그림은 제 영화인 <유도리>에도 나옵니다) 결과적으로는 사람들이 여러가지로 상상할 거리가 많은 자켓이 된 것 같네요. 옷같은 경우는 자주 입는 옷을 입고 찍은 건데, 몇 벌을 갈아입으면서 찍다가 그 중에 흰 남방에 까만치마가 제일 나은 것 같아 그걸로 했습니다. 남색 땡땡이 남방 버전도 있었습니다.
– 앨범에 대해 – 욘욘슨의 의미는?
욘욘슨은 미국소설가 커트 보네거트의 <제5도살장>에 나오는 구전민요의 가사를 보고 멜로디를 붙여 만들기 시작한 게 처음 아이디어였습니다. 위스콘신에사는 욘욘슨이라는 사람이 길에서 누가 이름을 물어보면 위스콘신에 사는 욘욘슨이라고 대답하면서 질문과 대답이 꼬리를 물고 무한반복되는 노래인데, 시초를 알 수 없는 미국의 구전민요랍니다. 이 가사를 보고 어릴 적 부르던 장난스러운 말들이 생각나서 여러가지를 갖다 붙이면서 노래를 만들어 보았습니다.
개똥아
똥쌌니
아니오
같은 말들이나 토마토 오디오 기러기 같은 앞 뒤로 읽어도 같은 단어들.
– 앨범과 음악에 대해 소개한다면요?
제 <욘욘슨>앨범은 저의 ‘일기’라고 생각합니다. 제가 음악을 공부한 것도 아니고 음악에 큰 뜻이 있어 시작한 사람이 아니라 기타 코드를 몇 개 알게 된 후 일기를 쓰듯이 머리속에서 나오는 생각들을 반복되는 기타 멜로디에 붙여 불러보기 시작하며 노래를 만들었던지라 아무래도 개인적이고 사소한 고민들이나 생각이 담겨졌기 때문에 그런 게 특징이 된 앨범이 된 것 같습니다.
그런식으로 몇 년간 혼자 만든 노래들을 엮어 앨범이 만들어졌고, 그 노래들로 활동을 해야했기 때문에 함께 할 멤버를 구하게 되었는데 먼저 만난 실로폰과 코러스를 하는 해미의 경우는 저랑 비슷하게 음악을 공부한 친구가 아니라서 둘이 만나서 놀듯이 연습하고 공연을 했고, 나중에 합류한 인철의 경우는 음악 전공자이면서, 다양한 방면에 이해도가 높아서 저처럼 맥락없이 노래, 공연하는 방식에 맞춰주면서, 때로는 좋은 방향을 제시해주기도 하고 전체적인 발란스를 잘 잡아주었습니다. 드럼의 경우는 처음 연습할 때는 풀셋트로 해보았는데, 인철이 이 밴드에는 플로어 탐 하나만 놓고 치는 게 더 어울릴 것 같다고 해서 그렇게 하기로 했고, 해미는 처음부터 코러스를 해달라고 부탁했던지라 코러스를 하면서도 연주할 수 있는 간단한 악기인 쉐이커나 트라이앵글, 실로폰을 치고 있습니다.
멋에 관해서는 제 신념이 있는데, 겉으로 보기에 멋부린 게 티나지 않으면서도 오랫동안 멋을 알아온 사람처럼 은근한 멋이 배어나오는 것을 추구합니다.
– 프로펠러 뮤직비디오에 대해 – 여기는 어디? 이 사람들은 누구?
프로펠러 뮤직비디오에서는 제가 학교에서 배운 것들을 적극 활용했습니다. 연극원에서 배웠던 움직임으로 안무를 만들자고 생각했고, 학교다닐 때 두 편의 단편영화를 찍으며 만난 배우들에게 출연해달라고 부탁을 했습니다. 그 중의 한 명이(유일한 남자출연자-나경호) 안무감독을 맡아 주었습니다. 모두 무용전공이 아닌지라 움직임이 완벽하지 않는데, 저는 처음부터 그걸 의도한 지라 그런 움직임이 좋았습니다. 이상한 일이 벌어질 것 같지 않은 평범한 곳에서 평범해 보이는 사람들이 가만히 앉아있다가 노래가 시작되고, 모두 천천히 움직이기 시작하고, 움직임이 반복되고 빨라지면서 노래와 함께 공간을 채우는 모습을 찍고 싶었습니다.
촬영은 영화과 동기인 친구들이 도와주었고, 편집은 학교에서 배웠던지라 – 제가 할 수 있었습니다. 촬영장소는 지인이 운영하는 ‘컬리솔’이란 카페의 마당입니다. 카페가 쉬는 날인 일요일 하루동안 찍었습니다. 처음 무용이 주된 뮤직비디오를 만들자는 아이디어는 2011년 12월에 떠올랐는데, 천천히 천천히 생각하고 친구들에게 도움을 요청하고, 3월부터 안무를 짜고, 연습을 하고, 6월에 촬영을 하고, 편집을 하고 완성을 하기까지 꼬박 1년이 걸렸습니다.
– 어떤 영화 좋아하세요?
제가 좋아하는 영화, 드라마 작가or제작자들의 이름을 나열하겠습니다. 우디 앨런, 래리 데이비드, 루이스 씨케이, 토드 솔론즈, 아론 소킨, 이창동, 에밀 쿠스타리차, 클린트 이스트우드, 기타노 다케시, 아네스 자우이.. 지금 생각나는 건 여기까지 입니다. 블랙코메디를 좋아하고, 대사가 많은 영화도 좋아합니다.
– 그림 작업은 예전부터 해오셨다고 들었는데, 페이퍼에서는 어떻게 일하게 되신건가요?
16살 때 고등학교를 그만두고, 17살 때 검정고시를 본 뒤로 바로 페이퍼에 합류했습니다. 중학교때부터 페이퍼를 즐겨보았고, 페이퍼 행사나 모임에 찾아가고, 만화담당기자님께 끊임없이 만화를 그려보내는 등 제가 열심히 구애를 했기 때문에 페이퍼 지면에도 만화를 싣게 되지 않았나 생각합니다. 중학생일 때 페이퍼 기자분들이 저의 아이돌이나 다름없었습니다. 그래서 지점토로 기자님들 각자의 캐릭터 인형을 만들어 선물하고, 편지를 보내기도 하고 아무튼 열심히 구애를 했습니다.
– 서울에서 제일 좋아하는, 정서와 맞는 장소가 있다면요?
서울 마포구 동교동에 있는 ‘아메노히 커피점’ 이라는 곳입니다. 시미즈 히로유키라는 일본분이 하시는 가게입니다. 공간이 너무 정갈해서 공부를 하거나 글을 쓰거나 편집을 할 때 집중이 잘 됩니다. 제 졸업영화인 <유도리>의 편집을 두 달간 매일 이곳으로 출근하면서 했는데, 공간이 정갈해서 그런지, 컷이 깔끔하게 잘 잘리는 것 같은 기분이 들었습니다. 앞으로도 편집을 할 일이 생기면 이곳에서 할 예정입니다.
이랑밴드의 역사가 담긴 – 이랑 역사 만화는 유어마인드 사이트에서 보실 수 있습니다.
이랑씨의 영화 – 유도리, 변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