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옛것들이 아직 많이 남은 동네 서촌에 정착하기로 마음먹은 집주인의 마음에서부터 설계는 시작된다. 주변의 한옥에서 보이는 처마와 담장, 옆집 다가구 주택의 베이윈도우, 사람들을 반기는 구멍가게의 어닝, 집 밖으로 내놓은 화분들은 새로 지어지는 청운동 작은집이 어떠한 모습을 띠어야 하는지 넌지시 알려준다. 신축되지만 원래 있었던 듯, 가능한 한 요란하지 않고 뽐내지 않으려는 태도로 집은 익숙한 형태와 평범한 언어들로 동네에 말을 건넨다.”
어떤 계기로 건축을 하고 싶다는 생각을 갖게 되셨는지 궁금합니다.
어릴 적 그림을 창의적으로 잘 그린다는 칭찬을 많이 받았어요. 그렇다고 미대를 준비하지는 않았고 별로 내키지도 않던 차에, 뭔가 건축가라는 직업이 멋있어 보였죠. 그림도 그리고 예술적으로 보였거든요. 그래서 대학에서 건축을 전공하게 되었어요. 이성과 감성이 모두 요구되는 건축 설계가 적성에 잘 맞아서 지금까지 하고 있는 것 같아요.
에이오에이 아키텍츠라는 이름은 어떻게 정해졌고, 어떤 계기로 사무실을 열게 되었나요?
11년간 다니던 사무실이 글로벌 금융위기로 경영이 어려워졌고 저는 퇴사를 결심했어요. 결국 건축가는 언젠가 이름을 걸고 본인 작업을 해야 하는 것이 순리라 생각하고 있었기 때문에, 일이 있든 없든 내 사무실을 하자라고 마음먹었죠. 그게 2013년에 사무실을 열게 된 계기예요. 그때는 돈도, 프로젝트도, 라이센스도 없는, 정말 ‘맨땅에 헤딩’이었죠.
원래 aoa는 ‘architecture of architecture’였어요. 2013년 개소 당시 건축계 내에는 건축의 주변을 둘러싼 사회현상, 건축업의 생존 문제, 건축 사무실 운영 등의 이야기들은 많았지만 정작 건축 자체에 대한 고민은 적어 보였어요. 케케묵은 문제지만 건축이 예술인지 기술인지 논쟁을 할 때면 저는 그냥 ‘건축이 건축이지’라는 생각을 했고, 그래서 단순히 ‘건축을 건축하자’는 의미로 ‘architecture of architecture’로 지었어요. 글자의 배열이 주는 리듬과 눈, 코, 눈 같은 그래픽적 유희가 다소 무거운 의미와 상충하면서 위트가 있었기에 큰 갈등 없이 정했어요.
그런데 2021년에 aoa라는 이니셜은 같지만 내용을 변경했어요. ’architecture of any-‘ (any-thing, any-where, any-body,…)로요. 이미 2017년 젊은 건축가상을 받고 난 후 정도부터 건축에 대한 저의 철학도 약간은 이동한 상태였고요. 나이가 들어가면서 건축을 건축한다는 생각이 다소 배타적이고 사회에 건강한 영향을 주지 못할 것 같다는 생각이 커졌고, 내가 디딘 땅과 사람들과의 관계를 기반으로 나와 우리의 작은 이야기부터 해야겠다고 느꼈어요. 그 시점에 사무실 홈페이지도 팝(pop)적이고 그래픽적인 볼드(bold)한 구성으로 변했어요. 제가 직접 디자인하고 만들었죠. 여전히 건축을 건축하고 싶지만 우리가 매일 마주하는 주변의 것들을 가지고 하고 싶어요.
다양한 주택 프로젝트를 진행해 오셨는데 결과물에서 실험적인 인상을 받았어요.
사람이 직접 생활하는 공간인 주택 프로젝트를 처음 시작할 때, 어떤 점을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시나요?
주택의 경우는 다른 프로그램들과는 다르게 사람의 삶을 직접적으로 담는 틀을 제공하는 것이에요. 특히 단독주택의 경우는 특정 개인이나 가족에게 일종의 ’삶의 형식‘을 제안하는 것이죠. 처음 프로젝트가 시작되면 가장 먼저 하는 일은 땅을 조사하는 것뿐만 아니라 건축주의 요구 사항 이면의 생각과 태도를 읽어내려고 노력해요. 단순히 요구 사항을 부분적으로 만족시키는 것을 넘어 더 중요한 것은 부분의 합 이상이 담긴 건축적인 아이디어예요. 집은 단순히 기능을 만족하는 기계가 아니며 사는 사람으로 하여금 생활하는 동안 예기치 못한 발견과 경이로움을 줄 수 있다면 좋겠어요. 어느 날은 새로움을, 어느 날은 익숙함을 느낄 수 있는, 편안하면서도 지루하지 않은 집이면 좋죠.
저에게 설계 시 중요한 것은 공간감보다는 평면이 가지는 형식이에요. 기능과 면적을 논리적이고 합리적으로 구성하면서도 건축주의 요구를 충족하는 새로운 유형을 탐구해요. ‘평면과 함께 살기’같은 것이랄까요? 공간감은 평면과 단면이 결정되면 자연스레 따라오는 것일 뿐 공간감을 위해 억지로 과도한 디자인을 하는 것을 선호하지 않는 편이에요.
겸씨의 집은 빛굴뚝 아래 응축된 복도와 외부 마당을 품은 8정방형 게임이고, 청운동 작은집은 1층 기능실의 조밀한 평면과 2층 중앙 기둥이 받치는 하나의 박공천장 아래 느슨한 거실의 대비가 있어요. 한편 홍은동 남녀하우스는 내부에 문이 없이 한 층 한 층이 방의 개념을 가지고 쌓인 매우 단순하고 명료한 구조로 되어 있죠. 공동 주택인 망원동 단단집은 살 덩어리를 연상시키는 대리석 기둥이 거실을 침실과 주방으로 분기시키며 드라마 세트장 같이 두 공간을 병치시켜 보여주고, 망원빌라는 어쩔 수 없이 삽입된 구조 보강재들이 마치 맥락 없는 오브제처럼 집 안에 유희적으로 존재해요. 이런 것들은 사는 사람들에게 소소한 재미와 ’나의 집‘이라는 애착이 더 생기게 하죠.
「겸씨의 집」이나 「재이네 집」, 「서촌 청운동 작은집」에서처럼 다양한 재료가 하나의 공간에서 드러나는 모습이 인상적입니다. 이런 재료를 사용하는 방식에 대해 얘기해 주실 수 있을까요?
집 안에 재료가 다양하게 나타나는 것은 매우 자연스러운 현상이에요. 어릴 적 시골 할머니 집을 생각해보면 쉽게 이해되죠. 부엌은 물과 불을 많이 사용하니 그에 맞는 석재나 타일을 쓰고, 거실은 아늑하고 따뜻함을 주기 위해 나무를 쓰고, 방에는 얼룩도 쉽게 지우고 교체도 쉽게 할 수 있는 벽지를 바르며, 방바닥은 열전도가 잘 되도록 장판을 깔았죠. 지붕에는 지붕 기와를 얹고 벽에는 벽에 맞는 재료를, 선홈통은 노출하죠.
각 용도에 맞게 재료를 쓰는 것은 매우 자연스러운 이치지만 언젠가부터 주택 내부가 미술관처럼 하나의 깔끔한 재료로 마감되었죠. 물론 예전과는 생활 습관이 바뀌긴 했지만 그런 집은 ‘살기 위해’ 만들었다기 보다는 ‘보여주기 위해’ 만들어진 것은 아닌가 생각해보게 돼요. 이러한 생각의 연장선에서 청운동 작은집은 각 용도에 맞는 재료를 적용하여 다양한 재료를 파편적으로 사용하고도 아름다울 수 있는지를 실험한 프로젝트입니다. 제 작업에서 재료는 감동을 주기 위해 선택되기 보다는 도상적으로, 때로는 상징적 의미로 선택되는 편이에요.
제주 쌓은집 거실의 현무암 덩어리 기둥과 강한 패턴의 낙엽송 문짝, 감귤색 벽돌이 그랬고 남녀하우스에서는 초록 대리석과 붉은 체리목 나무가 각각 성별을 나타냈으며, 단단집에선 구조 기둥을 핑크 대리석으로 마감하여 구조의 무거움과 그래픽적 가벼움이 동시에 느껴지도록 의도했죠.
집은 여타의 프로그램과는 다르게 대중의 기억에 각인된 형태가 있는데, 이는 어린아이가 집을 그릴 때 소위 ’집 모양‘으로 잘 나타나요. 이처럼 누구나 이해하기 쉬운 집 모양, 원형, 삼각형, 정사각형 등의 기본 도형을 통해 마치 나무 블록 장난감으로 만든 것처럼 어딘가 친근하고 익숙한 형태의 집이 되도록 하죠. 가능한 한 단순하고 명료한 구성을 통해 기능적이면서도 친숙하고 다양한 발견의 즐거움이 있는 집이고 싶어요.
주택 프로젝트에서 내부 공간과 외부 환경과의 관계를 설정할 때 중요하게 생각하는 지점은 무엇인가요?
절제된 창과 개구부예요. 보통은 외부 공간으로 최대한 많이 열어 풍경을 끌어들이고 싶어 하지만 그러한 제스처는 집에 유리면이 너무 많아져 자칫하면 상업시설처럼 가볍게 되는 결과를 가져오기도 해요. 그보다는 풍경의 ‘프레이밍(framing)’을 통해 그 경관과 거주자의 생활이 좀 더 구체적인 관계를 맺도록 노력해요.
예를 들어 멍 때리는 창, 요가 할 때 보는 창, 식사할 때 보는 창, 은은한 북측 빛을 들이는 창, 봄바람을 들이는 창 이런 식으로요. 너무 큰 통유리창은 극대화된 경험을 위해 잠깐 머무는 숙소가 아닌 이상, 집에서는 오히려 아늑함도 없고 호기심도 떨어지며 에너지도 낭비돼요. 그리고 전망을 보는 창과 환기를 하는 창을 가능한 한 구분하여 창 사이즈를 공간의 크기에 적절하게 계획할 필요가 있습니다. 호지의 경우 각 숙소에서는 창이 절제되어 있어 내부 지향적 공간인 반면, 커뮤니티 창고는 전면 유리창을 가지고 있어요. 이는 둘 간의 공간 용도가 확연히 다르기 때문이에요. 저에게 필립 존슨의 글래스 하우스보다 루이스 칸의 에슈릭 하우스가 더 좋은 이유입니다.

「서교근생」은 실험적이면서도 친근하게 다가가는 건축이라는 인상을 받았습니다. 사람들이 일상적으로 마주하는 건물의 입구나 1층 파사드, 계단, 우편함 같은 요소들에서도 유머러스한 감각이 느껴지는데, 이러한 접근은 어떤 의도에서 비롯된 것인가요?
서교근생은 홍대라는 장소성에서 출발한 프로젝트예요. 동네 근린생활시설인 서교근생은 임대 효율을 위해 정직하고 기능적인 사각 박스면 돼요. 그런데 홍대라는 곳은 각양각색인 것들이 이산집합인 동네잖아요. 그래서 저는 서교근생이 그런 사이에서 혼자 젠체하는 미니멀한 건물이 아니었으면 했어요. 다들 과장된 액세서리에 스트리트 패션을 하고 있는데 저만 명품 블랙 수트를 미니멀하게 입고 싶지는 않다고나 할까요? 그러한 생각에 서교근생은 블랙 수트를 입긴 했지만 볼드한 단추에 어글리 슈즈를 신고 베이스볼 캡을 쓴 것 같은 위트와 여유가 있는 건물이 됐어요.
건축 공간으로 보면 컴팩트한 코어와 직사각형의 기둥 없는 공간의 단순한 구성이에요. 하지만 길과 맞닿는 1층에는 다양한 액세서리가 달려있어 사람들을 유혹하며 손을 내밀어요. 뼈다귀처럼 생긴 금속 기둥은 사실 우편함이에요. 이 모양은 포스트모던 건축가 한스 홀라인에 대한 오마주고요. 전면에 툭 튀어나온 종이접기 같은 계단은 1층 상가로 바로 통하는 길이고, 창 위에 길게 생긴 분홍 콘크리트 쐐기는 ’상가‘의 어닝을 상징하는 장식이자 비를 막는 눈썹 같은 요소고요. 꼭대기에는 엘리베이터 탑을 가리는 네온 간판도 있죠. 주 출입구에서는 둔탁한 손잡이와 원형 창이 있는 금속문으로 사람들을 맞이해요. 내부 복도와 엘리베이터 홀에도 홍대의 과장된 제스처가 연속된 것이에요. 레드 트레버틴 대리석과 흰 무늬가 있는 검은 화강석, 구릿빛 난간, 유리 블록과 초록색 보 등이 각각의 강한 존재감을 가지고 배열되어 있죠. 이러한 모든 요소들은 기능적 박스의 엄격하고 딱딱한 느낌을 누그러뜨리죠. 내가 놓이게 될 곳, 우리의 현실을 존중하면서도 본인이 해야 할 말을 유머러스하게 하는 방식이죠.


「호지」 프로젝트는 어떤 해석에서 출발되었는지 궁금합니다. 초기 건축주의 요구는 무엇이었고, 그것이 어떻게 최종적인 공간 구성으로 발전되었나요? 콘크리트를 주요 재료로 선택한 이유도 궁금합니다.
호지는 무엇보다 전형적인 시골 마을에 들어서는 숙소라는 점이 중요한 설계의 단초가 되었어요. 소위 말하는 바다 뷰, 산맥 뷰 같은 스펙터클한 풍광 없이 정말 특별할 것 없는 조용한 시골 마을이었어요. 그런데 제게는 이런 상황이 오히려 더 좋아 보였어요. 대지 주변으로 있는 밭들과 나지막한 산, 저 멀리 들리는 개 짖는 소리, 옆집 굴뚝에서 피어오르는 연기가 너무 평온하고 소설 속 한 장면 같았죠.
특히 하루 종일 드는 햇볕과 살짝 가라앉아 무성한 잡초들로 폭삭 덮인 땅은 보는 순간 건축적 영감으로 다가왔어요. 최대한 원래 있던 잡풀들을 그대로 둔 채 집들을 약간 땅으로부터 띄운다면, 가냘픈 풀과 콘크리트 데크가 아름다운 긴장감을 줄 거라는 확신이 들었고 동시에 비가 억수같이 오는 날 땅이 약간 잠긴다면 콘크리트 데크가 물 위에 살짝 떠 있는 매우 초현실적인 장면이 될 거라 생각했어요. 게다가 길게 드리우는 그림자는 키리코 그림처럼 나른한 시간 감각을 더할 것이 분명했고요.
건축주분들의 요구 사항은 단순했어요. 3채의 독립 숙소동과 아침 식사 등을 하는 커뮤니티 창고, 그리고 건축주 가족이 살 집을 1,000평 정도의 대지에 서로 간 프라이버시와 동선을 고려해서 계획해달라는 것이 큰 요구 사항이었어요. 그리고 최근에 지어지는 고급 인테리어 마감에 럭셔리 어메니티로 치장된, 소위 ‘스테이’라 불리는 숙소들에 피로감을 가지고 계셨어요. 이러한 상황에서 고민하면 할수록 새로 들어설 무언가는 원래 동네에 있던 가정집과 창고 같이 친숙한 형태와 재료로 조심스레 스며들어가는 것이 맞다는 생각에, 결국 호지는 시골에서 볼 수 있는 익숙한 형태의 건물이 되었죠.
원두막이나 팔각 초소, 곡물창고, 처마에 처마를 덧댄 가정집 같은 것들 말이죠. 외관 재료 또한 가장 쉽게 볼 수 있는 시멘트 벽의 창고 같은 느낌이길 바랐고요. 다만 더 풍부한 질감을 위해 창 상단의 높이까지는 거칠게 다듬었죠. 대신 내부는 바닥, 벽, 천장 모두 나무로 이루어져 있어요. 마치 첼로 악기 안에 들어온 것처럼요.





「호지」에서 서로 다른 형태의 볼륨을 원형 동선으로 연결하는 원형 보행로는 어떻게 구상하게 되었나요. 프로젝트 안에서 건물들의 관계와 그 주위 풍경과의 관계는 어떻게 의도하였는지도 궁금합니다.
호지 프로젝트는 대지에 처음 간 날 떠오른 배치의 아이디어가 마지막까지 거의 그대로 구현되었어요. 각기 다른 다섯 동을 서로 간 프라이버시를 우선적으로 고려해서 적절히 떨어뜨려 배치하고, 땅에서 살짝 떠 있는 커다란 원형 콘크리트 보행로로 각 집들과 닿을 듯 말 듯 연결하면, 자칫하면 키치(kitsch)가 될 구불구불한 시골길의 재현을 피하고 가운데에 정원을 공유하는 아름다운 풍경이 될 것이라 확신했어요. 옆 땅과의 담장은 당연히 없어야 했고요.
원형 보행로 안이 공동의 장소라 한다면 원형 보행로의 접선처럼 연결된 각 숙소는 서로 간 방해되지 않는 방향에 바비큐를 할 수 있는 콘크리트 데크를 가지고 있는데, 어느 집은 맞은편 파밭을 바라보고 어느 집은 멀리 있는 산을 바라보고 어느 집은 저 멀리 마을을 바라봐요. 바비큐를 하는 동안 집 안에서 흘러나오는 음악과 멀리 개 짖는 소리, 풀벌레 소리에 농수로의 물소리까지 한데 섞이죠.

The houses without fences become a natural landscape among the surrounding rice fields, fields, and vinyl houses.
에이오에이가 지속적으로 만들고 싶은 건축의 방향은 무엇인가요? 혹시 앞으로 해보고 싶은 프로젝트가 있나요?
아름답지만 푸근하고, 엄격하지만 자연스럽고, 부조화적이면서 조화롭고, 진지하지만 농담의 여유가 있는? 어쨌든 저는 좋든 안 좋든 우리의 현실 안에서 나의 이야기를 하고 싶어요. 홍상수 영화 같은? 대단할 것 없는 것 같지만 계속 생각하게 만드는… 해보고 싶은 것이 있다고 할 수 있는 것도 아니고 무슨 일이든 주어지면 하는 거죠. 저는 프로그램 자체보다는 디자인 사고 과정이 중요한 사람 같아요.
마지막으로 서울이라는 도시를 어떻게 정의하시나요? 그리고 서울에서 좋아하는 장소/공간을 추천해 주신다면요.
서울 좋죠. 나의 도시인데. 혼종과 모순의 도시예요. 그대로를 인정하려고요. 그리고 사랑하려고요. 이제는 너무 선진국 따라 무분별하게 개발하는 건 하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저는 서촌 거리를 산책하는 것을 좋아해요. 마음 내키면 환기미술관까지 걸어가요. 북한산도 가끔 오르고요.







